▲ 황진미 영화평론가

<런던 프라이드>는 2014년 제작된 영국영화로, 한국에서는 지난달 27일 개봉했다. 원제는 ‘프라이드(PRIDE)’로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가리킨다.

1. 성소수자들이 광부 파업을 지지하는 모금을 벌이다

영화는 1984년 영국의 광부 파업에 대한 뉴스 클립으로 시작된다. 대처 정부가 산업의 중심축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면서, 석탄은 사양산업이 된다. 정부는 탄광과 광부의 수를 줄여 나가는 정책을 펴서 84년에는 10년 전에 비해 30%가 감소된 상황에 이른다. 광부들은 정부의 탄광폐쇄 정책에 반대하며 그해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유혈 진압했고 이후로도 강경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언론들은 광부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내놓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때를 배경으로 삼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런던 근교 고급주택가인 브롬리에 사는 대학 신입생 조가 런던행 기차를 타고 프라이드 축제 행렬에 합류하는 것이 보인다. 조는 엉겁결에 누군가를 대신해 깃발을 들게 되고, 그날 뒤풀이까지 참석하면서 이후 성소수자 모임의 일원이 된다.

그날 모임에서 마크는 장기 파업 중인 광부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분개하면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동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준 적도 없었고, 광부 파업과 성소수자들의 삶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으며, 당장 우리들의 투쟁을 해 나가기에도 벅찬 상황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맞다. 주로 런던 태생인 성소수자 모임의 멤버들 중 광부 파업에 동지의식을 느낄 사람은 드물다. 유일하게 탄광촌 출신인 친구는 “웨일즈, 나를 매일 패던 자식들의 동네”라며 아픈 기억을 꺼내 놓는다.

하지만 마크는 연대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우리들을 따라다니던 경찰의 압박이 요즘 덜하다고 느껴지지 않아? 그건 경찰들이 모두 광부 파업에 투입됐기 때문이야. 예전의 우리들처럼 그들이 부당한 박해를 당하고 있어. 그러니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해.” 국가의 탄압을 받는 사람들끼리 연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크는 광부들에게 투쟁기금과 생계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광부들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친구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그는 혼자서라도 모금을 해야겠다며 모금함을 들고 나간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 투쟁해 왔던 친구들이 그를 혼자 보낼 리 없다. 친구들은 마크와 함께 ‘광부들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모임’을 뚝딱 결성하고 모금운동을 시작한다. 모금함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변태라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랫동안 투쟁해 온 관록의 활동가들이 열정을 쏟아부은 덕에 제법 많은 액수가 모였다. 이제 이 돈을 광부들에게 전달하면 되는데, 아뿔싸 돈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없다!

마크와 친구들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가며 탄광노조에 전화를 걸지만 “저희는 광부들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모임입니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화를 끊는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로 인해 이들과 엮이기 싫은 탓이다. 궁리 끝에 웨일즈의 작은 탄광촌의 마을회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본다. 겨우 전화를 받은 굼뜬 할머니의 말귀가 어두운 덕에, 덜컥 “오케이”가 떨어진다. 이렇게 성소수자 모임과 광부들 간에 최초의 결연이 성사된다.

2. 어렵게 만난 두 개의 세계

탄광마을의 이장 격인 다이가 후원에 감사하다며 게이·레즈비언클럽에 방문했다. 성소수자들은 다이에게 “광부를 본 것은 처음이야”라고 말한다. 이것은 “게이를 본 것은 처음이야”라는 대사와 대구를 이룬다(그 말에 곧바로 “커밍아웃 한 게이를 본적이 처음이겠지”란 말이 따라붙는다. 게이임을 숨기는 게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질적인 세계의 조우를 뜻한다. 다이는 처음 접하는 세계를 보면서 잠시 얼떨떨해하지만, 곧 놀라울 만큼 침착하게 감동적인 연설을 들려준다. “막막한 적에 맞서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있는지도 몰랐던 지원병을 만난 기분”이라며 절실한 감사를 표했다. 이후 다이의 초대로 성소수자들이 버스를 대절해 탄광마을을 방문하는 일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어색하게 맞는다. 형식적인 감사를 표할 뿐, 어떻게 마음을 터놓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개중에는 “게이가 나한테 반하면 어떻게 하냐”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성소수자들도 처음엔 눈치를 보느라 평범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한 사람에 의해 분위기는 확 바뀐다. 배우 출신의 조너선은 마을 여자들 앞에서 화끈한 춤을 춘다. 디스코 음악에 맞춘 과감한 춤사위로 마을 여자들의 환호와 갈채를 한 몸에 받자, 마을 남자들은 춤을 배우고 싶다며 호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광부 파업이 성소수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알려지자, 여론이 악화할 것을 걱정한 마을사람 중에는 이들의 지지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더욱이 정부가 파업 대오를 분열시키며 각개격파해 들어오자, 파업은 버틸 동력을 상실한다.

3. 소중한 연대의 가치

85년 3월 광부 파업은 실패로 끝났다. 영화는 광부 파업 결과를 자세히 보여 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투쟁 과정을 소중히 다룬다. 성소수자들이 광부 파업에 연대하는 동안 부잣집 도련님 조는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탄광촌을 떠나 온 지 오래된 게이는 가족과 재회했다. 탄광마을에서 오랫동안 성소수자임을 감추고 살아왔던 초로의 남자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웃여성에게 자신이 게이임을 조용히 밝힌다(그에 대한 반응은 “진작 알고 있었다”는 무덤덤함).

영화의 마지막은 85년 프라이드 축제의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여 준다.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탄광노조가 대거 참가해 행렬의 맨앞에 선 것이다.

촛불혁명에 의해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동성애 반대” 논란은 봉합되지 않고 있으며, 군형법에 의해 성소수자 군인이 영외에서 합의하에 동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고 직업을 잃는 야만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일찌감치 예고된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에 대해서는 ‘새 정부 흔들기’라며 비난하는 여론도 존재한다. ‘사람이 먼저’라는 새 정권의 구호 속의 ‘사람’에는 노동자도 성소수자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런던 프라이드>가 던지는 교훈은 한 가지다.

“게이들의 권리는 주장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권리는 지지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노동자의 권리는 주장하면서도, 여성의 권리는 지지하지 않는다면요? 이건, 비논리적인 거죠.”

6월30일은 민주노총 공동행동의 날이고, 7월15일은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노동자·성소수자·여성·장애인·이주민 등 부당한 박해를 받는 이들이 서로 연대할 때만이 사람으로서의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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