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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리모델링] "힘 있는 자 힘으로, 돈 있는 자 돈으로 연대하라~"
   
▲ 시인과 변호사와 해고자와 사진가가 25일 서울 영등포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공사현장에서 건축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무보수 잡부라고 서로를 소개했다.

장정 네 명이 섀시 하나를 붙들고 우왕좌왕했다.

"유리를 깨서 해체하는 게 낫겠어요."

"그러다 다쳐요. 고무파킹 제거하고 그대로 떼내면 돼."

"십장이 시키는 대로 해요. 잡부는 선택권이 없어."

'십장' 송경동 시인이 '잡부' 송기호 변호사에게 지시했다. 십장의 지휘 아래 장정들이 부지런히 손을 놀렸지만 영 어색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던 인테리어 기공목수 한 명에게 물었다. "어때 보이세요?" "뭐…. 잘 하네요." 진정성은 '1'도 없어 보였다.

한참만에 섀시와의 씨름을 끝내고 맞은편 주택 앞에 모여 앉은 시인과 변호사와 해고자와 사진가가 깔깔댔다. "아, 우린 뭘 해도 어색해!"

"미숙련 잡부라서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제가 빼빠(사포)질은 자신 있는데…."

송 변호사가 먼지가 내려앉은 얼굴로 눈앞 4층짜리 건물을 흐뭇하게 올려다봤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연대의 공간이 될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이 일꾼들을 내려다봤다.

힘으로, 시간으로 연대하는 사람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에 소음이 가득했다. '꿀잠' 리모델링 현장이다.

바깥에서 보면 근처 여느 허름한 다세대주택과 다르지 않지만 안에서는 누군가와 함께한 25년 세월을 지우고, 비정규 노동자 쉼터로 새로 태어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리모델링은 현재 전세임대 중인 2·3층을 제외한 1층과 4층, 옥탑, 지하 1층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하층에는 공연장과 전시관, 1층에는 카페 겸 식당, 장애인 쉼터, 빨래방, 사무공간이 들어선다. 휴식공간으로 사용될 4층과 옥탑은 최대 20여명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김소연 꿀잠 상임운영위원은 "철거는 끝났고, 본격적인 리모델링은 20% 정도 진행됐다"고 말했다. 지난 11일부터 시작한 철거공정은 이날 옥상 빨래걸이로 사용하던 철봉을 걷어내고 잔해물을 정리하는 청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22일부터는 전문시공팀이 목공·전기·배관공사를 하고 있다.

벽을 허물고 공간을 새로 만드는 조적작업은 기공과 기계가 했지만, 폐자재를 치우고 바닥과 벽지를 뜯어내고 청소 같은 '때 빼는' 작업들은 모두 일반인들이 전담했다. 동양시멘트 비정규 노동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파인텍지회·유성기업지회·기륭전자분회, 사진가, 파견미술팀, 건축가, 인권운동가, 변호사 등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찾아와 힘과 시간을 연대하고 돌아간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꿀잠' 소식을 보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시민도 적지 않다. 이날 아침에도 야간경비일을 마친 학교비정규 노동자 한 명이 일할 날짜를 찜해 놓고 돌아갔다.

물품과 기금으로 후원하는 이들도 있다. 이태호 전 경희대 미대 교수는 타일 100만원어치와 운반경비 30만원을, 노희준 건축가는 석고보드 200장을 후원했다.

현장소장인 최유영(협동조합 어반트러스트)씨는 "오래된 건물이라 위험한 작업은 기공들이 했고, 나머지는 연대하러 오신 분들이 다 했다"며 "보통의 공사현장에서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일꾼들 모두 숙련공이 아니다보니 근육통·관절통은 기본이요, 크고 작은 부상자가 나온다. 작업반장을 자임한 송경동 시인은 며칠 전 깨진 유리창문에 오른쪽 종아리를 찔려 여섯 바늘을 꿰맸다. 송 시인은 "누가 봐도 산재인데, 돼지고기 두 근 사 주고 퉁치더라"며 슬쩍 눈을 흘겼다. 온 방의 벽지를 스크래퍼로 긁어낸 어느 날은 지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일꾼 여섯 명이 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2주 가까이 노가다를 뛴 일꾼들이 집에만 가면 골아떨어져 정말 '꿀잠'을 잔다고 하니, 일석이조 아닌가.

   
▲ 일꾼 차광호씨가 점심시간에 옥탑방에서 물병을 베고 잠시 누웠다. 곧 잠에 들었다. 꿀잠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꿀잠이란

황철우 꿀잠 집행위원장은 "가장 힘들었던 철거 작업 첫날, 가장 모범적으로 일했던 분들이 동양시멘트, 쌍용차, 유성기업, 파인텍, 콜트·콜텍 같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라며 "마치 자기가 살 집을 지으러 온 것처럼 열심히 일을 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옛 스타케미칼) 조합원 차광호씨는 '내 집을 짓는다'는 심정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그에게도 다른 사업장 노조사무실을 전전하거나 풍찬노숙하며 투쟁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타케미칼 전신인 한국합섬 폐업반대 투쟁을 벌였던 2007년, 민주노총 건물 뒤편 영등포공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동료들과 한뎃잠을 자곤 했다. 서울 동대문 인근 서울의류노조(옛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서도 6개월을 얹혀살았다.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씩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신세를 지니까 눈치도 보이고, 마음도 불편하고, 미안하고 그랬어요. 여기저기 전전하고 다니면서 투쟁하던 시절 생각하면 꿀잠 같은 공간의 소중함이 더 절실하죠. 그래서 2년 전 꿀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인 김경봉씨에게 꿀잠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못다이룬 꿈을 이뤄 줄 공간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도 6년 전 카페 겸 공연장 겸 쉼터 기능을 하는 '기타노동자의 집'을 서울 망원동에 만들려고 했었다.

"우리 투쟁이 어떻게 될지 몰라 미적미적대다 결국 못했죠. 많이 아쉬웠는데, 꿀잠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어요. 그래서 꿀잠에 더 애착을 갖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 윤충렬 쌍용자동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이 전동드릴로 유리창틀을 해체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 일하던 사람이라 드릴을 잘 쓴다고 주변 사람들이 칭찬했다.

꿀잠의 도전은 계속된다

다음달 하순 개소하면 2015년 7월부터 시작된 꿀잠 프로젝트의 9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역시나 돈이 문제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꿀잠 주춧돌 기금(1구좌 50만원) 후원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문정현 신부의 글·서각 판매금, 스토리펀딩 등으로 6억4천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집을 매입하면서 담보대출 받은 3억원에, 내년 계약이 만료되는 2·3층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 리모델링 공사비 등을 포함해 6억7천만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 일상적인 운영비를 감당하려면 CMS 1만원 후원자가 1천명 정도는 돼야 한다. 아직 반도 채우지 못했다. 황철우 집행위원장은 "조직된 노동계의 연대가 절실하다"며 "대기업 정규직노조들이 많이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송경동 시인은 "박근혜 탄핵은 한국 사회 정치구조를 일부 바꾼 것에 불과하다"며 "1천100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게 중요하기에 진정한 한국 사회 변화를 위한 작은 진지를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꿀잠에 뜻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후원계좌 1006-701-442424 우리은행 사단법인 꿀잠

   
▲ 옥상에 감나무 그늘이 좋다. 지대가 높아 전망도 트였다. 일꾼들이 밥 먹고 잠시 쉬고 있다.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이 자신의 커피 잔에 감꽃잎이 떨어졌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 지난 11일 첫 삽을 떴다. 잡부들이 낡은 벽지를 떼고 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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