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올해 하반기 조선업 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조선업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데다, 구조조정 여파가 대형조선소로 번지면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협력업체들은 대형조선사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원청들이 일방적으로 계약단가를 인하하는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를 하면서도 원청이 해야 할 추가작업 비용을 하청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업계는 올해만 200곳이 넘는 협력업체가 문을 닫을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 조선발주량 1년 새 71% 급감
올해는 일감 없어 걱정


28일 정부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조선발주량은 1천117만CGT(표준환산화물톤수)로 1년 새 71.4% 급감했다. 2015년 조선발주량은 3천910만CGT였다. 저유가에 따른 해양플랜트 발주 부진과 저성장 기조·물동량 감소에 따른 해운시황 침체 영향이 컸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은 올해 세계 조선발주량을 2천140만CGT로 내다봤다. 지난해보다 다소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2011~2015년 평균 발주량(4천200만CGT)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국내 조선소 경영사정은 악화하고 있다. 세계 조선발주량이 급감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차지하는 몫도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조선 수주점유율은 2011년 40.2%에서 지난해 15.6%로 하락했다.

남겨진 일감도 적다. 우리나라 조선 수주잔량은 지난해 12월 2천41만CGT에서 올해 3월 1천767만CGT로 하락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는 해양플랜트를 중심으로 수주잔량이 남아 있어 이익을 내지는 못해도 일감이 없진 않았다”며 “올해는 물량이 급격히 줄어 추가 수주를 하지 못하면 일조차 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 5사 사내협력사
올해만 200곳 문 닫을 듯


지난해 조선업 협력사와 중소조선소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구조조정은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으로 확산했다. 대형 3사는 지난해 10조3천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수립하고 올해 말까지 80%를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협력업체 사정은 더욱 어렵다. 조선 5사 사내협력사연합회(사내협력사연합회)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을 포함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는 지난해 6월 675곳에서 같은해 12월 637곳으로 줄었다.

이들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같은 기간 9만7천67명에서 8만7천43명으로 1만24명 감소했다. 한 달에 1천671명씩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올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사내협력사연합회는 상반기에만 사내협력업체 96개가 도산하고 1만5천685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반기로 갈수록 도산하는 업체가 늘어 연간 202곳이 문을 닫고 3만2천929명이 구조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협력업체는 1년 새 절반이 줄었다. 지난해 4월에는 85개 협력업체에서 4천490명이 일했는데, 올해 2월에는 43개 협력업체에 2천643명의 노동자만 남았다. 현대중공업이 자구계획에 따라 올해 7월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단하면 남은 업체들도 폐업 수순을 밟아야 한다.

단가 후려치기로
계약단가 절반 가까이 줄어


사내협력업체들의 줄도산과 인력감축은 조선업황 부진이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가중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형조선소의 일방적 단가인하,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다.

대형조선소들은 자구계획을 실행하면서 고통분담을 요구하지만 협력업체들은 “분담이 아닌 전가 수준”이라고 반발한다.

경남 거제 한 조선업 협력업체 대표는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올해 물량 계약단가가 59%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최소 80% 수준은 보장해야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한데, 지금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면서도 빚을 내서 회사를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청과 달리 협력업체들은 지난해 초부터 구조조정·자금압박에 시달렸고 벌써 1년 넘게 고통을 당했다”며 “원청들이 올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협력업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단가인하를 시행한 것은 고통분담이 아니라 전가에 가깝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복수의 조선업 협력업체 전·현직 대표도 “협력업체 대부분이 지난해부터 크게 경영사정이 악화했다”며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폐업하는 협력업체들이 올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노동시간과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시작했지만 갈수록 적어지는 일감과 낮은 계약단가에 허덕이는 협력업체들이 많다는 얘기다.

회사 유지를 위해 빌리거나 모을 수 있는 돈은 지난 1년간 이미 다 끌어다 썼다.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빚 많은 조선업 협력업체에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거의 없다. 협력업체들이 폐업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폐업을 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두고두고 빚을 갚아야 한다. 임금이나 퇴직금, 4대 보험료를 체불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올해 1월 운영하던 업체를 폐업한 한 전직 협력업체 대표는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기는커녕 직원들 임금과 4대 보험료를 체납해 최근까지도 노동부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조선업이 활황일 때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벌어 둔 돈이라도 있겠지만 나처럼 나중에 뛰어든 이들은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 10곳 중 7곳
경기불황 아닌 단가인하로 문 닫아


협력업체들은 원청이 최소한 국민연금·고용보험 같은 4대 보험료와 퇴직적립금·일반경비 같은 고정비용을 계약단가 변동과 상관없이 실비에 준하게 지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협력업체가 폐업할 때 임금·퇴직금이나 4대 보험료를 체불했을 경우 원청에 지급의무를 부과하도록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래야 형사처벌이라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협력업체 대표는 “고정비용은 단가인하 또는 인상과 상관없이 계속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라며 “원청이 변동비용뿐만 아니라 고정비용까지 단가하락분을 반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협력업체들은 '긴급·수정작업'이라는 명목으로 계약에 없던 작업을 추가로 시키면서 원청이 해야 할 업무를 협력업체에 넘기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력업체에 고통을 전가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러한 실태는 정부 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노동부가 지난해 말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도산한 협력업체 73곳을 조사했더니 수주물량 감소·거래처 미확보 같은 경기적 요인으로 문을 닫은 업체가 30.1%에 불과했다.

나머지 69.9%는 불공정한 도급계약(46.5%)과 기성금 미지급(21.9%)을 포함한 원·하청 불공정거래 탓에 도산했다. 투입비용보다 적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설계변경 등 도급계약 변경에 따른 소요비용을 하청에 전가하는 행위가 대표 사례로 꼽혔다.

“정부가 협력업체 지원책 내놔야”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력감축이 지속되자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기간 연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조선사를 대표하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해 3월 “조선업체들이 자산매각과 조직개편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하고 있지만 조선업황이 회복되지 않아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며 “올해도 인력감축이 예상되는 만큼 기간연장과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다음달 중 고용정책심의회를 열어 기간연장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협력업체들은 "특별고용지원업종 혜택이 원청인 조선소에만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한 협력업체 입장에서 휴업·휴직까지 하면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내협력사연합회 관계자는 “조선업 협력업체들은 원청에서는 하청이라는 이유로, 근로자에게는 사용자라는 이유로 중간에서 무시당하고 공격받는 처지”라며 “정부가 원청인 조선소나 조선업종 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협력업체를 위한 지원책을 내놓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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