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연매출 1조원 이상을 내는 기업을 ‘1조 클럽’이라 부른다. 지난해 1조 클럽을 달성한 182개 기업은 영업이익만 73조원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1조 클럽의 고용은 오히려 1만5천명 줄었다.(조선일보 5월23일자 경제 1면) 조선일보는 이 기사로 고용절벽을 말하고 싶을 게다. 기사 출처는 재벌닷컴이다.

같은 재벌닷컴 자료로 경향신문은 '4대 그룹 경제력집중 5년 새 더 심해졌다'고 썼다.(5월22일자 19면) 5년간 30대 그룹의 자산은 쪼그라들었으나 4대 그룹은 큰 폭으로 늘면서 경제력집중이 심화됐다. 30대 재벌그룹 안에서도 4대 26으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두 신문은 왜 그렇게 됐는지 분석하진 않았다. 일간지가 그걸 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정답이 있겠지만, 뜻밖에 매일경제가 답 중에 하나를 보도했다. <대기업 협력사 60% “단가협상 일방통행”>(5월22일자 23면)이란 기사가 말해 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연초에 몰려 있는 납품단가 협상을 갓 끝낸 3~4월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공기업의 삼성’으로 불리는 한전과 한전 자회사에서도 이런 경제력집중화의 난관을 풀 열쇠가 보인다. 한전은 전력 기자재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제품을 구매할 때 주는 선급금을 기존에는 14일 내 최대 70%까지 줬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한시적으로 5일 이내 최대 80%까지 주기로 했다.(매일경제 5월20일자 11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전의 송전선 설치공사를 도맡은 자회사 한전KPS에서 일했던 두 전직 직원이 200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일하지도 않은 31명에게 일한 것처럼 거짓 서류를 꾸며 가족과 친척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일용직 인건비를 줬다가 돌려받는 수법으로 공사 인건비 5억원을 빼돌려 말썽이다. 인천 부평경찰서가 두 사람을 잡았다.(조선일보 5월19일자 14면) 겉으론 상생을 말하면서 속으론 이런 비리나 저지르고 있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대선 기간 중앙일보에 실린 희대의 칼럼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조사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조선일보 22일자 사설도 역대급이다.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촛불 참가했으니 빚 갚으라’고 정부에 요구한 전교조>다. 사설은 전교조 비난을 넘어 “새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등을 ‘지지집단에 대한 빚 갚기’라고 보는 이들도 꽤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선거 국면에서 지지해 주거나 도움을 준 집단의 민원 해결에 나서면 ‘국민 통합’이 아니라 ‘국민 갈라놓기’ 정책이 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새 정부의 통일외교나 경제통 인사발표를 보면 조선일보의 우려는 잠시 접어 둬도 좋겠다. 적어도 지지집단 민원해결과는 거꾸로 가는 게 분명해 보이니까.

나름 고민은 많이 하셨지만 용비어천가를 신문 지면에 올리는 이들도 많다. <‘민주정부’의 기분 좋은 출발>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같은 칼럼은 안 쓰는 게 더 나았다. 차라리 같은 용비어천가라도 <개혁 없이는 ‘경제위기 극복·민생 회복’ 요원하다> 정도로 뼈 있는 한마디쯤은 남기는 게 국민과 역사에 대한 도리다.

선거전이 한창 달아오르던 3월 말 “김앤장이 올해 퇴직한 고법판사 80%를 싹쓸이했다”는 씁쓸한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여전히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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