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상과 권고 수용률 제고를 지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위상·기능이 약화된 것으로 지적받은 국가인권위가 위상을 되찾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 대통령이 인권위 위상 제고에 나선 것은 정부·공공기관의 인권위 권고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50% 밑도는 권고 수용률 “높여라”

문 대통령은 이날 인권위의 대통령에 대한 특별보고 재가동을 주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가 대통령에게 특별보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형식에 그쳤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를 받은 각급 기관의 수용률을 높이고, 수용 여부나 불수용 사유를 인권위에 회신하지 않는 행위를 근절하도록 했다.

2001~2016년 각 기관이 인권위의 정책·제도개선 권고를 전부 수용한 비율은 49.1%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일부 수용(34.7%)까지 합치면 83.8%다. 진정사건·직권조사 권고 전부 수용률은 74.6%, 전체 수용률(일부 수용 15.8%)은 90.4%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수용은 사실상 권고 불수용에 해당하므로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그동안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이행계획 회신 의무도입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권고 성격상 피권고 기관의 의지가 없으면 개선하기 힘들다”며 “정부의 이번 방안은 피권고 기관의 개선의지를 높이는 데 매우 긍정적”이라고 환영했다.

노동부, 노조설립 신고제도 개선권고 묵살
김대환 전 장관은 “인권위는 돌부리” 모욕


부처별 수용률이 집계되지는 않고 있지만 노동기본권이나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과 관련해 인권위 권고를 받은 노동부 역시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노동부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개정 권고안을 거부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6월 “공공부문에서 채용서류 반환제도를 지키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는데, 노동부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4년 11월에는 인권위가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지침을 개정해 무기계약직 전환의 기준이 되는 상시·지속업무 범위를 완화하도록 권고했지만 노동부는 거부했다. 교사나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권고도 수차례 외면했다.

인권위는 특히 2010년 10월 “노조설립신고제도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시행령 개정을 노동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를 거부했다. 2013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조치가 논란이 되자 현병철 당시 국가인권위원장은 성명에서 “지금이라도 위원회 권고를 이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2009년 11월에는 인권위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사용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권고를 했는데 노동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인권위 위상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2005년 10월 인권위는 정부가 발의한 비정규직 보호 관련 제·개정안에 대해 “노동인권을 보호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이 “모르면 용감하다” “단세포적 기준” “노동시장 선진화로 가는 과정의 마지막 돌부리”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됐다.

특수고용직 보호권고 예정, 이번에는?

인권위는 조만간 특수고용직 노동권 보호를 위한 권고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10월에도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 3권과 4대 보험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권고 수용률 제고 지시가 나온 가운데 노동부가 조만간 나올 권고안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 회장인 박성우 노무사는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처가 인권위 권고를 잇따라 거부한 것은 노동부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며 “노동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립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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