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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정치적 조건과 노동계의 ‘전략적 선택’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1998년에 체결됐던 사회협약을 두고 2000년대 초 한 노사관계 학자는 민주노총의 '전략적 선택'을 통해 협약 체결이 가능했고, 노사정위원회 제도화가 가능했다는 분석을 했다. 그러면서 신조합주의(neo-corporatism)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도 전략적 선택과 소통적 혁신으로 사회협약 체결이 가능하다는 사례로 한국을 포함시켰다.

당시 민주노총의 선택이 충분한 '전략적 숙의'를 거친 판단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소지가 크다. 전략적 선택이라 함은 통상 기존 상식과 관습에 위배되지만 '주고받음'을 따졌을 때 잃는 것보다 남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하는, 혹은 단기적으로는 잃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이득이 클 것이라는 판단하에 어떤 행위자가 종래의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난 길을 '굳이' 가는 경우를 가리킨다.

98년 사회협약이 충분한 전략적 고려하에서 이뤄진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운 만큼 지난 20년간 노사정위에 참가하지 않은 민주노총도 진중한 전략적 선택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어느 순간 노사정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방안을 거부하기로 하면서 내부적으로 더 이상 유연한 고려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약 20년의 시간을 관성적으로 보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전략적이든 아니든 그것은 하나의 조직이 공식적으로 취한 태도이기에 분명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결과와 효과에 대해 과연 손익계산을 충분히 했는지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지금 ‘상식의 파격’에 행복해한다. 필자는 과거 박근혜 정부를 지칭해 ‘문화지체’적 상황에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본지 2015년 10월15일자 18면 '열린 사회, 닫힌 국가' 칼럼 참조> 국가가 사회의 기대와 상식을 따르지 못했고, 그것은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문재인 정부가 보여 주는 이른바 개혁을 향한 '광폭 행보'는 바로 그 '지체의 시간' 속에서 일어난 국가행위와 국민상식 간의 간극을 속히 메우고 있다. 9년간의 후진적 통치문화에 물들어 불통의 만성체증을 겪었던 국민에게 새로운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최근에는 정부조직 변화와 인사를 통해 정권 초기 기조와 방향성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고, 특히 일자리와 민생에 강조점을 두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말잔치만 가득했던 재벌개혁을 발본적으로 수행하고,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결기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대부분 권위주의·반공주의·반노동주의로 얼룩졌던 남한의 정치역정에서 그간 딱 10년 경험했던 이른바 자유주의 정권이 다시 5년의 통치기간을 보장받았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하나 우리가 기억하듯이 당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통치기에) 국가와 노동의 관계는 그렇게 이상적이고 순탄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던 시기였고, 글로벌 경제에 깊게 연루된 신흥산업국으로서 그런 흐름을 거역하기 쉽지 않았던 시기였다. 게다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쓰나미 같은 상흔이 가계와 기업을 강타한 속에서 주섬주섬 국가재건을 다시 추구한 시기였다. 수많은 친노동적이고 친사회적인 정책기조가 유지됐고 정치적으로도 국민의 참여가 꽤 존중받았음에도, 노동계로서는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오늘날 비정규직이 만연하게 된 뿌리도 당시 형성됐던 것이라는 비판도 가해진다.

한국 사회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노동계와 진보정치세력이 보다 강화되고, 보다 합리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자신을 가다듬고 성장해 가야 한다는 것에 큰 틀에서 동의 가능하다. 노동조합이 강화되고 경제와 사회의 다양한 장 속에 잘 뿌리내리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나가고, 보다 근본적인 체제성찰과 개혁을 주창하는 세력(예컨대 정의당)이 국민에게 큰 지지를 얻을 때 비로소 일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기를 펴고 안전하고 실질적인 권리를 향유하며 행복할 수 있는 기반이 넓어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길을 실현하기 위해 보수정부보다 자유주의 정부가 집권한 상태의 정치토양이 훨씬 더 우호적이고 유리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국에서 수구적 보수세력은 계속해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가 자유주의 정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수구보수세력이 국가를 쥐었을 때와 질적으로 차이를 보이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진보 순결주의’를 유지하는 자기만족적 위안감을 줄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영리하고 전략적인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정부와 노동계 모두 귀하게 여기고 잘 가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의 견인차로 상호 성장해 가길 기대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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