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최근 국회에서 노동법원 신설과 이에 따른 노동위원회 심판기능 폐지를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됐다. 우선 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권리구제 수단으로서 노동법원이 신설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이와 연계해 기존 노동분쟁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던 노동위 심판기능이 폐지되는 것에는 여러 지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된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노동법원 신설에 따라 조정 권한을 제외한 판정·해석·심사 등 노동위 심판기능 일체를 노동법원으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 위반 등을 법적으로 다투려면 노동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에 이의가 있는 경우, 노동조합 임시총회 소집권자를 지명받아야 하는 경우, 단체협약에 노사 간 이견이 있어 해석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노동법원에 신청 내지 소송을 해야 한다.

노동위 심판기능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

실제로 노동법원이 신설되면, 노동법원을 통한 소송 결과가 기존 노동위 심판을 통한 결과보다 법리적 완성도가 높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노동법원에서 진행될 소송절차가 기존 노동위의 간이(簡易)한 심판절차보다 치밀하고 세심할 것이라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노동법원이 없는 지금도 법원의 민사소송 절차를 통하면 노동위 심판절차보다 훨씬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판결을 구할 수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필자는 왜 노동위 심판기능 폐지에 반대하는가. 그 답은 연간 1만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판결을 구할 수 있는 민사소송을 제쳐 두고 노동위의 간이한 절차를 이용하는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동법원 신설과 노동위 기능조정을 분리해서 고민해야 하는 이유, 즉 노동법원 신설이 노동위 심판기능 폐지로 귀결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노동위를 찾는 노동자 중 많은 수가 소규모업체의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노동위의 간이한 절차가 오히려 제도적 장점 내지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해고의 부당성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복직이 어렵다는 특성을 지닌다. 소규모업체여서 복직이 되더라도 자신을 해고한 사장과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하거나, 워낙 저임금인 데다 노동조건도 열악해 복직 뒤 고통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빨리 합의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나은 탓이다. 안타깝지만 복직이 어려운 노동자에게는 법리적 완결성보다는 간단하고 쉬운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할 수 있다.

2015년 노동위에 제기된 1만2천140건 중 단 415건(3.4%)만이 행정소송으로 넘어갔고 나머지 96.4%는 지방노동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 단계에서 종결됐다. 초심인 지노위 단계에서 이뤄진 화해·취하율은 무려 70.2%나 된다. 소규모업체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적 특성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09년과 2010년 노동위 심판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지노위에 사건을 제기한 노동자 중 월급여 300만원 이상 노동자는 18.4%였는데, 그 비율이 중앙노동위 재심 단계에서는 26.7%로 늘어났다. 노동자 임금이 낮을수록 분쟁을 빨리 끝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둘째, 노동위 구제절차에는 소송절차와 달리 엄격한 형식이 요구되지 않고, 당사자 입증주의와 함께 직권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제도 접근성이 매우 높다. 노동위에서는 노동자가 방문·편지·팩스 등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정확하게 호소할 수만 있으면 사건을 쉽게 접수하고 진행할 수 있다. 송달료는 물론 인지대도 없어 노동자는 완전히 무료로 구제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패소에 따른 소송비용 부담도 없다.

더욱이 월평균 임금 200만원 미만 노동자는 누구나 노동위를 통해 무료로 변호사나 노무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대리인도 없고 노동자의 주장과 입증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에도 노동위는 조사관을 통해 직권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해 판단 근거로 삼는다. 이에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노동자조차 노동위를 통하면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2009년 지노위 심판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의 대리인 선임률이 46%, 사용자의 대리인 선임률이 34.7%로 오히려 노동자의 대리인 선임률이 더 높았다. 노동자 대리인이 선임되지 않은 경우 그 인정률(일부인정 포함)은 9.3%로 대리인이 선임됐을 때인 24.6%보다 낮았지만, 화해까지 포함한 해결률(인정+일부인정+화해)은 67.2%로 대리인이 선임됐을 때의 55.7%보다 오히려 높았다.

노동위 사건 중 행정소송 제기 3.4% 그쳐

셋째, 신속한 처리기간은 노동위가 법원과 명확히 구별되는 대표적 특징 중 하나다. 2009년과 2010년 노동위 심판 결과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지노위의 사건 처리기간은 평균 51.4일, 중앙노동위의 사건 처리 기간은 평균 57.3일에 불과했다. 노동위는 사건 처리기간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사건이 장기화할 경우 노동자에게 생활상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과 비판에 따른 것이다.

신속한 처리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두 당사자 간의 충분한 주장과 입증, 노동위의 직권조사 활용을 통한 충분한 증거확보가 시간 부족으로 인해 충실히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는 소수의 상임위원과 대다수의 외부 비상임위원에 의존하는 제도적 한계와 결합돼 판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한계에도 신속한 처리기간은 많은 노동자들이 소송에 앞서 노동위를 찾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법원에서 소송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충분하고 원직복직을 강력히 희망하는 노동자들조차 노동위를 찾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신속한 처리기간이다. 설사 노동위에서 불리한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행정소송에서 다투거나 아예 처음부터 민사소송을 새롭게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넷째, 분쟁 이슈의 특성에 따라서는 소송보다 노동위 심판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노동자 권리구제 측면에서 바람직한 이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에게 직접 재해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가 제대로 보상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고용노동부에 심사나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만약 노동자가 그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노동위에 심사나 중재를 제기할 수 있고, 노동위는 반드시 1개월 이내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민사소송제도가 있음에도 근기법에서 노동부와 노동위를 통한 재해보상 절차를 별도로 정하고 있는 이유는 재해노동자에게 신속한 보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노동부 결정에 이의가 있는 노동자는 노동법원에 소송 내지 신청을 해야 한다. 재해노동자에 대한 근기법상 재해보상 규정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노동법원을 거치게 되면 민사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

노동조합 임시총회 소집권자 지명,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한 시정명령, 단체협약 이견에 대한 해석 등에 대한 심판권한을 노동위에서 노동법원으로 이관시킨 것도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면의 한계상 일일이 살펴보기 어렵지만 애초 위 사안들에 대한 심판권한을 법원이 아닌 노동위에 부여한 것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엄밀한 법률적 판단만이 항상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일정 시기를 놓치면 구제 실익 자체가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위 간이성·신속성·제도적 접근성 필요

필자는 노동법원 신설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노동법원 신설이 노동위 심판기능 폐지로 귀결되는 것에는 적극 반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위는 노동법원이라는 소송구조로는 충족될 수 없는 고유한 제도적 특징과 장점을 지니고 있다. 노동자 권리구제 측면에서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신설되는 노동법원이 현재의 노동위가 지닌 간이성·신속성·제도적 접근성 등의 특징과 장점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면 필자도 재고할 용의가 있다. 만약 노동법원이 모든 소송을 반드시 소 제기일로부터 2개월 안에 끝낼 수 있다면, 노동자의 입증이 없더라도 노동법원 스스로 직권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면, 노동자에게 단 한 푼의 비용도 받지 않고 패소하더라도 소송비용에 대한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을 수 있다면, 월평균 임금 200만원 미만 노동자 모두에게 소송 대리인을 선임해 줄 수 있다면, 글씨를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노동자도 노동법원의 도움을 받아 큰 어려움 없이 소송을 할 수 있다면, 필자도 재고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법원이 어떤 체계와 방식으로 구성되고 운영되더라도, 소송구조가 지닌 특성 내지 한계로 인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법원 신설을 이유로 노동위 심판기능을 폐지하자는 법안 내용은 고급음식점이 양질의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전국 분식점을 모두 폐업시키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분식점이 음식의 질, 영양가 측면에서 고급음식점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식점이 시간과 돈이 부족한 대다수 서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노동위 역시 노동법원과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특징과 장점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1년에 3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1조4천억원 이상의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있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버젓이 노동법을 위반하고 당당하게 노동조합을 탄압한다. 노동법이 아예 적용조차 되지 않는 위장 자영업자, 즉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수백만명에 이른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이런 상황에서 써야 하는 말인 듯하다. 2017년 대한민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법적 구제장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나마 어렵게 작동되고 있는 제도를 줄이고 조정하자고 논의할 때가 아니다. 부디 국회가 제도적 완결성에 집착한 나머지 노동자들의 진정한 이해와 요구를 간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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