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요즘 같으면 참 편하겠다.” 기자인 친구에게 건넨 말이다. 하루가 아니라 매시간 새로운 소식이 넘쳐나니 말이다. 그것도 매우 굵직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책임질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가장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지난주 발표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눈여겨봤다.

정책실장은 그야말로 이 정부가 나아가야 할 기본 방향을 정하는 위치가 아닌가. “반재벌적인 인사다. 재벌개혁이 시작됐다”라는 게 언론의 대체적인 장하성 교수 평가다. 텔레비전에서 간혹 듣거나 그가 쓴 책을 훑어보는 수준인지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노동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과연 노동자가 이 정부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런 목적으로 장하성 실장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이라는 부제를 단 책이다. 그의 생각은 명료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노동소득에 대한 분배가 멈췄다고 진단했다. 거기에는 재벌이 있다. 100대 재벌대기업이 우리나라 모든 기업 이익의 60%나 차지하면서 정작 불과 전체 노동자의 4%만을 고용했다. 어떤 기준으로 누가 보더라도 불공평하지 않는가. 60%의 이익은 60% 정도의 노동자에게 고루 분배돼야 하지 않는가.

그는 재벌대기업으로 인해 왜곡된 분배를 바로잡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진단했다. 다행인 것은 여전히 우리나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자본 선진국에 비해 이른바 버는 것(노동소득)이 가진 것(재산소득)에 비해 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불평등 해소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는 평가다.

이 책은 2015년 12월에 나왔다. 올해 4월까지 무려 20쇄나 찍어낸 그야말로 베스트셀러다. 아마도 그의 치밀한 논증에 많은 독자들이 설득됐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의 생각을 정부 운영의 기초로 삼고 있지 않는가.

더욱이 놀라운 것은 2015년 12월 이때 벌써 불평등을 넘어 정의로운 분배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주체로 미래세대인 청년을 꼽은 것이다. 희망은 청년세대에 있고 이들의 참여와 행동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딱 1년 뒤인 지난해 12월 광장에서 시작돼 바로 오늘에도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광장 촛불을 더 크고 강렬하게 불사른 주체는 2030 청년들이다.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자신들이 분배에서 소외됐다”고 외쳤다. 표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한 세대 이전 선배들의 뜻과 다르지 않다. 장하준 교수가 주문한 것인 양.

분배가 급하다는 대학자의 진단과 해소방안에 어찌 토를 달겠는가. 하지만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100대 대기업이 순순히 먼저 알아서 분배에 나서겠는가? 저항이 없겠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걱정되는 측면도 있다. 저임금과 고임금,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일자리에 대한 상당한 이해는 있었지만 정작 노동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규직=조직화 된 노동=대기업”이라는 크게 잘못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있다. 분배 또한 결국엔 노동의 문제인데 말이다. 노동이 없다.

요컨대 왜곡된 시장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 못지않게 정의로운 분배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동기본권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자가 지목한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깨어나” “참여와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에 무엇이 있겠는가. 노동조합 말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청년들이 참여하는 노동조합이 분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정의로운 분배의 주체가 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 그만이다. 하청회사 소속 노동조합이라고 하더라도 원청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와 자유롭게 교섭만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분명 정의로운 분배로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다. 저비용에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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