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으로 일하다 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하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고는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김아무개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사망당시 32세)는 25세이던 2007년 한 전자장치 생산회사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2009년 2월 필름 커팅작업을 하다 손가락 6개가 절단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2010년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못하고 장애가 남았다. 통증도 사라지지 않았다.

치료 기간 김씨는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등 정신질환을 앓았다. 3년간 조울증 치료를 받았는데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2014년 3월 거주하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공단은 김씨의 죽음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의 아버지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1·2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사고 이후 지적 손상이 발생하지 않았고, 사고로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공단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망인이 만 26세 미혼 여성으로서 이러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정신질환으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부닥쳐 자살에 이르게 돼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