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2017년 5월18일 광주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고,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부여잡고 끌어안았다. 순간 울컥한다. 대선이 끝나고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대통령 당선자가 큼지막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광화문광장에 선다.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국정운영 방향성을 브리핑하고, 내각의 핵심인사들은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청와대를 거닐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에서 봉건 군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건강하게 협력하고 상식적으로 갈등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새로운 정부를 맞이한 기념으로 박근혜씨 집권 기간 중 써 왔던 글들을 다시 읽었다. 말문이 막혀서 욕조차 할 수 없는 암담한 시간들이 너무 많았다. 지난 정부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다분히 고의적이었고, 악의적이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경멸스러웠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치졸했다. 무능함은 도를 지나쳤고, 말이 안 통한다는 점에서 상식을 초월했다. 무슨 자격이 있다고 오만함은 충만했고, 탐욕은 지저분했다. 지난 정권하에서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던 사람들은 크게 무너졌고, 맹목적인 사익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대통령과 측근들의 행위는 타의 모범이 돼 부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눈과 귀를 막고 입을 닫는 것이 바람직한 규범으로 제시됐다.

확신컨대 박씨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지 않을 것이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거울의 방에 대통령이 아닌 왕족을 세워 놓고 광기의 향응을 즐기던 사람들 중 법의 심판에 노출되지 않은 다수는 흉물스러운 방구석에 모여 앉아 촌스럽게 돼먹지 않을 후일을 도모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역사가 일그러진 이들의 존재를 낱낱이 기억하고 모욕하기를 바란다.

지난 시간 동안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한다. 3년의 시간 광화문광장을 지켜 온 세월호 가족,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외치던 백남기 농민의 가족, 성주와 밀양 주민, 소녀상을 지켜 온 사람들, 강남역과 구의역에서 포스트잇과 헌화로 연결의 마음을 표하던 사람들, 상처 입은 이들의 삶과 나라의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견디며 촛불의 광장을 밝혀 온 이름 모를 사람들, 정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소신을 행사한 수많은 동료시민들이 미치도록 고맙다.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정부에 바라는 기대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은 집단이면서 동시에 성장만능·각자도생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모순으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당사자 집단이기도 하다. 오늘날 청소년·청년들은 성장의 시계추가 멈춰 서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 내야 한다. ‘헬조선’에 담긴 청년층의 냉소는 미래세대가 처한 현실에 공감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법론을 성찰하지 않는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을 향한 반감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새로운 정부가 미래세대 관점으로 사회구조를 바라보고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세계를 가지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규범에 따르면 공직자가 해야 할 일은 태산같이 늘어난다. 헬조선에서의 삶은 극한인생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공직자에게 극한직업을 정중히 요구한다. 새로운 정부의 건투를 빈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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