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준 철도노조 비정규조직국장

정말 다행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무책임했고 무능했던 정부가 국민의 거대한 촛불혁명으로 물러났다.

우리 사회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고, 적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업무는 외주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 냈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공감대는 ‘국민에 맞서는 정부’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 정부를 거치면서 외주용역 노동자수를 약 9천명까지 늘렸다. 공공부문 최대 외주화 기록이다. 이 중 열차승무·차량정비, 시설과 전기의 유지보수, 역무 등 국민의 생명·안전 업무를 수행하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는 5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세월호와 구의역 사고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슴 아픈 사고가 지난해 9월에 일어났다. 경북 김천역 인근에서 선로작업을 하던 외주하청 노동자 2명이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던 KTX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죽는 순간까지 1천명의 승객을 태운 KTX가 탈선할까 봐 자신들이 작업하던 수레차를 선로 밖으로 밀어내려고만 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보다 승객 안전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직접고용이 아니어서 관제와 기관사 등 안전과 위험을 함께 다루는 다른 노동자들과 직접 연락하고 협력하면서 일할 권리가 없었기에 죽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이들이 하는 선로의 유지·보수 업무를 국민의 생명·안전에 필수적이라며 필수유지업무로 지정했고, 헌법으로 보장한 노동 3권마저 제한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헌법적 권리마저 제한할 필요가 있다던 노동자들은 정작 자신의 목숨을 지킬 권리조차 없었다.

더 무서운 일은 이러한 동일한 사고가 이미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1월 인천공항철도 선로를 유지·보수하던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테크 소속 노동자 5명 역시 ‘직접 소통하고 협동할 권리’ 없이 사망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호남선 유지·보수 노동자 7명도 동일한 원인으로 사망했다.

현장에서 안전과 생명을 담당하는 노동자를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으로 나눠 의사소통하고 협동하지 못하게 장벽을 세워서는 국민의 생명도, 노동자의 생명도 지킬 수 없다.

지난 정부는 작업 인부가 사망할 뿐 열차가 탈선하지 않는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듯 계속되는 사고에도 외주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국민의 생명도 노동자의 생명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생명·안전·위험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정책으로 받아안고 출범했다. 노조와 시민들의 싸움으로 철도공사는 KTX 정비업무 외주화를 철회하겠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우리 철도노동자는 지난 10년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부·코레일과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날을 꿈꿔 왔다. 더 이상 선로에서 죽어 가는 노동자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 간 수많은 생명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우리의 다짐을 지킬 때가 왔다. 지금 당장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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