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도 새 정부가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남부지법은 18일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에게 회사에 1천만원, 회사 대표에게 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지회장이 "2015년 5월 배재형 전 지회장이 목숨을 끊은 것이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 때문"이라는 취지로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다. 배 전 지회장은 2015년 5월1일 출근하지 않고 노동절 집회에 참석했다가 손배 청구를 당했다. 전 지회장의 집회 참석이 손배 청구를 낳고, 회사의 행위를 비판한 현 지회장이 다시 손배 소송을 당한 것이다.

사용자들이 파업이나 집회 같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신청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노조 쟁의행위와 관련해 사업주가 청구한 손배액은 2천72억3천700만원이다. 183억6천만원이 가압류됐다.

손배·가압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신종 노조탄압’ 수단으로 등장했고, 노동계는 제도개선을 요구해 왔다. 사용자들이 손배·가압류를 제기하면서 내거는 논리 흐름는 이렇다. 먼저 노조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는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업무방해 때문에 손해를 입었으니 노조나 노조간부·조합원이 손해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 청구를 금지하고 가압류를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 적용 금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촉구한다. 비슷한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강병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국가가 민주노총 사업장 노조에 청구한 22억원의 손배 소송은 정부 의지로 철회할 수도 있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손배·가압류 문제와 관련해 갚지 못한 빚이 있다. 노무현 정부 집권 첫해인 2003년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조합원 고 배달호씨, 고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이 손배·가압류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목숨을 끊었다. 이를 계기로 노사정은 손배·가압류 남용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노력에 합의했다. 철도공사 같은 일부 사업장에서는 조합원 개인이나 가족에게 손배 청구를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개선까지 이르지 못했고 2005년부터는 손배·가압류가 다시 급증했다.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는 “노동 3권 보장은 궁극적으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부터 시작된다”며 “새 정부는 참여정부 당시의 논의를 승계하는 차원이 아니라 노동 3권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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