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살인적 노조파괴를 자행한 갑을오토텍의 사측 대리인을 문재인 대통령이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민주노총이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관해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 것을 읽으며, 새삼 충격을 받았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변호한 것이 뭐가 문제냐는 반문은 개중 점잖은 편이고, 세 번째 ‘민주’정부에 딴죽을 거는 적폐 ‘노동조합’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변호사가 옹호해야 할 기본적 인권의 핵심은 헌법에 천명돼 있고,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그러한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한다. 탈법과 폭력으로 노동기본권을 짓밟은 자본을 변호한 전력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원칙에 모순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새삼 헌법의 노동기본권은 정치권과 여론에서 ‘들으려 하지 않는 소리’임을 느낀다. 헌법은 1948년 제정시부터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천명해 왔지만, 이를 철저히 무력화시키는 하위법령들과 행정으로 인해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올해 4월 변호사·노무사·노동법 연구자 등을 대상으로 헌법과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현행 노동관계법 및 노동행정이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는 실태에 관해 설문조사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결과는 100점 만점에 20점으로, 낙제점으로 나타났다.

“노조를 결성·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의 범위가 적절히 규정되고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 답변이 87%, “노조 설립신고제도가 노조설립자유의 원칙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 답변이 84%에 이르렀다.

학습지교사·레미콘운송기사·화물지입차주 등 특수고용 노동자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법내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구직자가 포함된 청년유니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포함된 이주노조는 노동부의 설립신고 반려로 수년에 걸친 법정다툼 끝에야 설립신고증을 받을 수 있었다. 조합원 중에 해고자가 있다는 이유로 십수년간 활동해 온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단체교섭 상대방인 사용자의 범위가 적절히 규정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85%,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해서는 93%의 응답자가 "노동 3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파견·용역·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급증했지만, 원청과 '진짜 사장'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이나 파업은 여전히 처벌 대상이 된다. 2010년 1월1일 여야 합의로 통과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도구로서 현장에서 톡톡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근로자의 범위가 적절히 규정되고 있는가?”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에 관한 판례·행정해석이 노동 3권 보장에 부합하는가?” “필수유지업무의 범위가 적절히 규정되고 있는가?” “쟁의행위에 대한 민·형사책임 법리가 노동 3권 보장에 부합하는가?” 등 단체행동권 관련 모든 질문에 응답자의 90%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도 불법,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도 불법이 되고, ‘불법’파업을 이유로 해고·구속을 당하면서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압류에 시달리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위의 질문들은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반복해서 입법·행정 개선을 촉구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중 상당수는 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정부의 정책·행정의 개선으로 실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노조법상 근로자·사용자 정의 확장에 대해서는 대선 시기에 유력 대선후보들이 공약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진실로 촛불대선에서 국민의 변화에 대한 바람을 현실화하려 한다면, 진정으로 '노동존중 사회'로 나아가려 한다면, 헌법상 노동 3권을 억압하는 행정·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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