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127번째 맞는 노동절, 노동자에게 축제의 날이 돼야 하는 5월1일 멀리 거제에서 전해진 비보는 너무나 처참했다. 노동자에게 유일한 법정 유급휴일인 5월1일. 하지만 그날조차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했던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31명이 사상을 입는 끔찍한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6명은 목숨을 잃었다.

원인을 규명해야 대책 마련된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5월2일. 삼성중공업은 사고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기에 앞서 "크레인 신호수와 운전수 간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사고가 난 것 같다"며 개별 노동자 부주의로 사고 책임을 돌렸다. 심지어 휴식시간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 잘못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처럼 왜곡했다.

이런 삼성중공업의 사고원인 파악은 △외부 전문기관의 안전점검 정례화 △외부 전문기관과 공동으로 크레인 작업의 신호체계 재구축 △크레인 충돌방지 시스템 개발을 통한 근원적인 사고 방지 대책 △안전전담 조직을 글로벌 선진업체 수준으로 확대·강화 △글로벌 안전 전문가 영입과 안전 선진사 벤치마킹을 통해 회사의 안전관리 체계 전면 재정비라는 형태의 ‘안전한 작업장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탄생시켰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삼성중공업의 진정 어린 사과와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삼성중공업만을 위한 마스터플랜이다.

노동자 참여권 보장해야

“사고가 난 프로젝트는 공사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공정을 매우 서둘렀다. 다른 해양플랜트 현장에서도 일을 해 봤는데 여기처럼 이렇게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처음 경험했다.”

“공정을 서두르다 보니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혼재작업이다. 5~6명 정도가 일하면 적당한 공간에 20~30명이 꽉 들어차서 작업을 했다. 서로 다른 업체가 서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이다.”

“공정을 서두른다고 좁은 작업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투입시켜 놓았기 때문에 휴식시간을 지킬 수가 없다.”

하청노동자가 말하는 크레인 사고원인이다(gnfeeltong.tistory.com/m/189 참조). 외부 전문기관이나 글로벌 안전 전문가가 없어도 사고의 진상을 정확히 밝히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은 현장 노동자와 노동계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외부 전문기관의 안전점검 정례화도 필요하겠으나 더 필요한 것은 현장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안전점검과 감시활동이다. 삼성중공업이 안전한 작업장 구현을 진정 원한다면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진짜 사장인 삼성중공업 책임져야

삼성중공업이 안전담당 조직을 글로벌 선진업체 수준으로 확대·강화하려면 위험과 안전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상시적·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게 된 유족들과 이번 재해로 트라우마를 겪게 될 재해노동자를 위해 제대로 된 보상과 치유를 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크레인 작업에 대한 신호체계가 구축되더라도 짧은 기간 안에 완료해야 할 작업이 계속되는 한, 무리하고 비정상적인 혼재작업을 지속해야 하는 한, 이러한 사고는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오늘 하루도 6~7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살인적인 한국 사회 노동현장에서 노동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산재사망이 발생한 기업과 정부 관료에 조직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사고현장과 장례식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 빠른 행보가 선거용 이벤트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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