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국회에서 일할 때 밤새우는 때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찬 공기를 마시러 의원회관 밖으로 나가면 출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를 보곤 했다. 첫 버스를 탔을 게 틀림없는 그 아주머니는 곱게 화장을 한 얼굴에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여명이 깃드는 어둠 저편에서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를 내며 일터로 향하던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매일 일찍 일어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언제 저렇게 단장을 했을까 생각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돼 내 자신을 돌아보곤 했다.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했다. 공공부문 사용자로서 본보기를 보인 것이다. 10년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잘된 일이라 생각했으나, 곧 개인적인 고민이 뒤따랐다.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세종시에 자리한 정부청사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전국 지자체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부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빌딩과 아파트를 쓸고 닦는 청소노동자들은?

민의를 대변해 법률을 만드는 국회 수장에게 묻고 싶었다. 한 방의 해결책이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동일노동-동일대우'라는 관점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첫 공식 대외활동으로 인천국제공항을 깜짝 방문해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발표했다. 해외출장을 업으로 삼은 탓에 한 달에 몇 번씩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내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법무부와 관세청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을 빼면 내가 공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다. 민간부문인 면세점과 식당 근무자들까지 고려하면 다양한 형태와 조건의 비정규직들이 인천공항에 몰려 있다.

인천공항공사가 바로 고용해야 한다, 공항공사 산하에 자회사를 설립해 채용해야 한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으면 정규직이 아니다, 자회사를 통해 고용해도 이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 이런저런 주장이 오간다. 서울시 산하 지하철공사의 청소직은 별도 자회사를 통해 일하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콜센터는 별도 재단을 통해 '정규직화'됐다.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연말까지 해결하겠다고 의지를 밝혔으니, 관계된 노사정 3자의 진지한 논의를 거쳐 해법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사정 모두 여기에 멈춰선 안 된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당장에 지방정부나 민간부문까지 포괄할 수는 없겠지만, 향후 5년의 일정 속에 중앙정부에 속한 기관에서 일하는 다양한 비정규직의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을 표준화(standardization)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청소·경비·유지보수 등 다양한 업종과 직무에 따른 처우를 논의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대화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노사정 혹은 노정 교섭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대화나 교섭 실패로 인해 한 주체인 중앙정부의 일방결정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중앙정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가 부처나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동일하듯 중앙정부를 위해 일하는 비정규직의 처우도 소속 기관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하는 일이 같다면 동일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이를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아직 이런 경험이 부족해 비정규직이 일하는 업종이나 직무를 한꺼번에 다루기 어렵다면, 우선 청소업과 경비업 등 가장 일반적인 업종과 직무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다면 지방정부 차원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대화와 교섭의 최종 책임을 지는 사용자는 광역단위 지자체 혹은 그 연합단체가 된다. 이렇듯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한 '표준화' 노력이 자리를 잡아 간다면, 중장기적으로 민간부문 문제를 해결해 가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공공부문 다음에 민간부문이라는 단계론이나 대기론적 접근이 아니라 두 부문의 동시다발적인 노력과 연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무튼 신선한 충격을 던진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화 논의가 '동일노동-동일대우' 표준화를 향한 산업-업종-전국 수준의 사회적 대화와 단체교섭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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