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에게 제조업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국가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은 “영업이익에 눈이 멀어 제품 안전을 무시한 기업과 부실한 제품 안전관리를 방조한 지난 정부 모두가 공범”이라며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정운)가 11일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자녀를 잃은 임아무개씨가 업체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제조업체 세퓨가 총 3억6천9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입증자료 미비를 이유로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퓨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딸이 원인불명의 간질성 폐렴을 앓은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는 “세퓨가 파산해 배상을 받을 길이 없다”며 “정부를 통해 구제받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이날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 차단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사과를 약속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그간 정부와 기업은 최소한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지난 박근혜 정부가 참사 진상규명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을 철저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에 △소비자 제품 화학물질 안전 참사에 대한 국가 재난 인정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위한 재조사 실시 △국회 가습기살균제 참사 특별위원회 재가동 △상한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기업에 대한 형사책임 강화 △옥시레킷벤키저 등 살인기업 영업 취소 △생활화학제품 제조·판매·유통·폐기 업체의 안전성 평가 의무제 도입 △다국적기업의 국내·외 별도 안전기준 적용 금지 △유엔 총회 및 세계보건기구(WHO), 유엔환경계획(UNEP)에 가습기살균제 특별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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