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촛불시민혁명이 만든 조기 대선이 이룬 정권교체다. 역사적 의미가 큰 성과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농단 적폐가 만만찮아 새 정부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국내외 난제가 산적한 조건에서 우선 서민이 편안하게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양극화로 피폐해진 민생을 되살릴 특단의 대책 마련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민주개혁 정부부터 이명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심화돼 온 비정규 노동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분기점을 마련하는 것이 화급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촛불민심이 반영된 결과이기에 어느 때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어 기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장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을 책임져야 하므로 어깨가 무겁겠지만 찬찬히 정책의 우선순위를 따져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노동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향방을 가름한다는 의미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세 가지다.

첫째, 임박한 최저임금 인상 문제다. 법정시한인 6월29일까지 결정해야 하는 2018년 최저임금과 관련해 노동계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최저시급 1만원 즉각 달성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원 공약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노사 당사자와 국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익위원 추천권 다각화와 가구생계비 중심의 최저임금 산정기준 변경, TV 공개토론과 배석 확대·정보공개를 비롯한 최저임금위원회 제도개선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고충을 우려하지만 원·하청 불공정거래 해소와 골목상권 침해 방지, 카드 수수료 및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 다양한 정책수단과 지원방책을 동원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최저시급 1만원에 따른 좋은 일자리 양산은 퇴직자의 ‘묻지마’ 창업을 줄여 영세 자영업자 간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지양하면서 더 높은 소득으로 생존권도 보장하는 상생전략이 될 수 있다. 촛불집회에도 오기 힘들었을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최저임금 수준이 얼마로 결정되느냐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첫 번째 시금석이 될 것이다.

둘째, 규모로 보나 심각성으로 보나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나 1천1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 노동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직접 챙겨야 할 핵심 선결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 노동 공약인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대기업 불법파견 근절 및 불법파견·위장도급시 즉시 직접고용(고용의무 아닌 고용의제),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조법상 노동자성 인정, 초단시간 노동자 차별처우 개선, 실업급여 수급기간 확대와 고용보험 보장성 강화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이 공약들만 차질 없이 이행하더라도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셋째,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잘 푸는 것이다. 27일째 물과 소금만으로 연명하다 결국 내려오고 만 서울 광화문광장 고공단식농성 노동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콜트콜텍, 동양시멘트,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아사히글라스, 세종호텔, 학교비정규직 등 헌법과 노동법이 보장한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악질사용주에 의해 고통받다 고공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 있게 관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인 만큼 악화일로로 왜곡돼 온 노사관계가 바로잡힐 수 있도록 투쟁사업장 문제부터 가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촛불민심을 반영한 새 정부라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부터 살리는 정책의지를 분명히 보여 줘야 한다.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을 누구로 임명하는가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명박근혜 정부에 비하면 파격적인 비정규직 정책 공약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실현할 적임자가 노동부 수장으로 와야 공약 이행이 흔들림 없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 대립이 첨예한 노동부문에서 협치 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앞세워 국민적 호응을 얻은 심상정 대표가 이끄는 정의당과 양대 노총, 청년노조와 여성노조를 비롯한 세대별노조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한 인선이 바람직하다. 헬조선이라고 고통스러워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노동부 수장을 엄선하는 숙의절차를 밟아 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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