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드디어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신정부가 출범했다.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누가 봐도 ‘노동의 후퇴’로 일관했던 보수정부 9년이었다. 노동운동은 위축됐고, 일자리 질의 격차는 심화했다.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났고, 청년실업은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국정농단이라고 하는 엄청난 비용을 들였지만 촛불혁명과 탄핵 그리고 엊그제 치러진 조기 대선을 통해 그 ‘후퇴의 시간’을 몇 개월이나마 일찍 끝낼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레이저를 쏘아 대며 청와대에서 유체이탈식 '노동개혁'을 외치는 모습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당사자도 익히 알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뭐니 뭐니 해도 노동이다. 단지 일자리라고 칭하고 말기엔 솔직히 미흡하다. 일자리는 기회지만 노동은 권리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소멸을 초래한다고 해도 노동권이 존중된다면 그것은 다른 이야기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번 그쪽으로 사고를 발전시켜 보자. 개인적으로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보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표현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에서 '노동 4.0'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면서, 단지 산업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문제를 넘어, 그를 통해 경제사회체제 전반의 구조와 운영방식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전략을 구축하면서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전환은 반드시 혁명적일(revolutionary) 필요가 없다. 급격한 혁명보다 차분하고 점진적이되 꾸준하고 단계별로 목표을 성취해 나가는 진화(evolution)가 나을 수 있다. 사회안정을 동반하고 보다 긴 번영의 토대를 닦으면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을 성취하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에 집착하면 조급함이 앞서고 무언가 한탕주의적인 변화를 꿈꾸며 서두를 수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만든다.

주안점과 주도자의 측면에서 디지털 전환은 다양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구별해 본다면 국가중심적일 수도, 시장중심적일 수도, 사회중심적일 수도 있다. 그간 2차 산업혁명과 3차 산업혁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국은 모두 국가중심적 방식을 활용했다. 국가가 드라이브를 걸고 프레임을 치면 시장이 그에 반응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국가’와 ‘시장’의 경로주도권 경합이 벌어지곤 했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사회’가 소외되는 것이었다.

신정부에서 본격화할 디지털 전환이 다른 경로를 도모할 수는 없을까. 말하자면 사회적 행위자들의 주도성을 활성화하고, 노동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사회협약 같은 수단은 이러한 류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적합할 수 있다. 만일 디지털 전환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한다면 그 안에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구조 전환과 신성장동력 발굴이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격차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정부·산업계·노동계가 함께 노력하고, 그를 통해 산업과 일자리 질서의 새로운 상을 담아낼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사고의 과감한 혁신, 그리고 이해관계의 새로운 조정원리 공유가 필수적이다. 지금이야말로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자주 거론돼 왔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현한 적이 없는 '사회적 타협'과 같은 조정원리를 '노동친화적 디지털 전환'이라는 개념하에서 의미 있게 활용하고 자리잡도록 시도할 만한 때다. 어쩐지 신정부의 정체성과 잘 어울려 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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