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머뭇머뭇 지인 손에 이끌려 상담실에 들어선 단정한 옷매무새의 칠순 노동자가 있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일터에서 그을려 온 이들 특유의 구릿빛 얼굴과 미간을 가로지르는 세월의 주름에 더해 뭔가 짐작하기 어려운 무거움과 어두움이 더해진 낯빛을 한 내 아버지세대의 노동자와 마주했다.

칠순 노동자는 차분했지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업했고 여덟 명이 일하는 조그마한 단조공장에서 고무공장에 납품하는 가위를 만들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공장도 인수한 괜찮은 삶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즈음 공장이 폐업했다. 다들 퇴직한다는 55세에 다시 임금노동자가 됐다. 피혁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3년이 지나 폐업했다. 백화점에서 경비노동자로 근무했지만 그곳도 문을 닫았다. 아파트 경비를 거쳐 10년 전부터 그가 일하기 시작한 곳이 주물공장이다. 시끄럽고, 덥고, 주물사와 노(爐)에서 날리는 분진과 흄에 뒤범벅이 되더라도 환갑을 지난 그에게 허락되는 일자리는 그 정도였다. 주물공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그가 하던 일은 중자(심지·core)를 만드는 일이었다.

3년 전 일요일임에도 출근해서 일을 하던 날. 자신이 만들고 크레인에 실려 이동하던 중자가 떨어졌다. 동료 노동자가 깔려 사망했고 처참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처참한 광경은 잊히지 않았고 꿈에도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사고 현장에 가면 가슴이 떨려 도저히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그날 일이 계속 떠올랐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만든 중자가 떨어져 사고가 난 탓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심경이 나아질까 사비를 들여 사망한 동료의 천도재를 지냈다. 그래도 자리에 누우면 떠오르는 처참한 광경과 죄책감에 잠을 잘 수 없어 무기력해졌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10개월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도 생계를 이어 가야 했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10년 전 주물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알게 돼 동갑내기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줬다. 사고가 난 회사에서 같이 일하다 먼저 퇴직하고 다른 주물회사에서 일하던 친구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힘들었지만 친구가 고마워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지 1개월이 지난 겨울 어느 날 갑자기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지게차 사고가 난 것이다. 조형반에서 일하다 쓰러진 이는 그를 다시 일터로 불러 줬던 바로 그 친구였다. 운행하던 지게차로 인해 손상된 칠순의 육신에서 흐르기 시작한 피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식도 있었고,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요. 내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지게차 사고로 쓰러진 칠순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동료 노동자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1년간 일터에서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칠순을 넘긴 나이, 세상사 웬만한 풍파는 겪고 넘어온 그도 지난 2년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던 끔찍한 경험을 뇌리에서 지우지는 못했다. 그의 처절한 경험은 의학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불린다. 신체나 정서상의 심각한 손상(외상·트라우마)을 입은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공포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고통스럽게 회상되고 재경험된다. 유사한 상황과 조건을 회피하게 되며, 지나친 각성상태나 반대로 지나친 위축이 지속돼 제대로 된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힘들어진다. 이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고 한다.

이는 참혹한 전장에서 본인이 심각한 죽음의 위협에 노출됐거나, 동료나 타인의 죽음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군인들의 사회심리적 병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리 잡은 개념이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세계대전,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심리적 손상을 당한 참전군인들 사이에서 이 개념은 확정된다. 매년 9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병들고 다치고 2천명 가까이 죽어 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 일터는 참혹한 전장과 다름없다. 세상을 파괴하는 전쟁터의 군인이 아닌,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터의 노동자가 죽음의 경험과 공포에 시달리는 그로테스크한 현실.

수년 전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할 것을 명문화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증상이 무엇에 연유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산재요양 대상이 되는지도 몰랐으나 세상일에 밝은 지인의 권유로 나를 찾았던 것이다.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고 산재신청을 하기로 했다. 여러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최근 산재승인을 받았다.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 또 쓰러지고 죽어 간다. 며칠 전 노동절에도 조선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죽어 간 이들을 기리고 부상당한 이들에 대한 정당한 조치는 물론이요, 그 안타까운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밝히고 조사할 일이다. 더불어 그 죽음의 현장에 함께했던 동료 노동자들 역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벌어진 사건·사고에서 비롯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산재로 인정하는 것도 물론 온당한 일이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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