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2016년 늦가을에 시작해 분노의 겨울을 보내고 2017년 봄까지 한국사에 한 장을 기록한 노동자 민중의 촛불항쟁. 이 글을 쓰는 오늘은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로 박근혜가 파면·구속된 후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2017년 5월9일 투표일. 이 글이 게재되는 10일은 이변이 없는 한 대통령이 선출돼 한국 사회 적폐의 발본색원과 제도적 개혁의 첫발을 실질적으로 내딛는 날. 촛불항쟁과 장미대선으로 이어진 역사적 국면에서 주목되는 사람들. 2017년 3월10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고 오늘의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사람들. 이름하여 3·10세대.

향후 촛불항쟁의 주역들이 적폐청산 과제 이행에 대한 역사적 증인이자 주역이 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3·10세대로 감히 명명해 본다. 헌법상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본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과정을 주도적으로 경험한 세대의 민주주의적 요구들은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내실 있는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세대 구분이 될 수밖에 없으니.

세대론(世代論)이란 각 세대가 갖는 사회적 성격의 차이가 그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보거나 세대 간의 차이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세대론에 따라 3·10세대의 변화를 추적하거나 기록하는 것은 학계의 몫이다. 다만 왕정이 무너진 이 땅에서 주권자들이 스스로 통치구조의 정점에 있는 자를 평화롭게 끌어내린 역사적 경험의 공동행위자로서 3·10세대라 칭해 보는 것이다. 이들의 첫 투표행위가 5월9일 대선이기 때문에 권리장전을 역사에 새로 쓰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압박은 클 것이다. 이를 새로운 권력의 수임자들이 잊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로 써 봤다.

박근혜 취임식이 열린 2013년 2월25일 국회 앞에서 투쟁을 결의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이제 9년간 이어졌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마감되고 오늘부터 새로운 정권기가 된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 친일독재 정권기, 1987년 헌법에 의한 6공화국 기간 동안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적폐의 과제들을 이번에는 역사의 강에 떠내려 보낼 수 있을까. 새로운 권력담당자들의 의지와 3·10세대의 과제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반면에 한국 노동계급은 어떤 상황인가. 비정규직·일상적 해고·성과퇴출제 문제 등 수많은 난제가 이 땅 노동자들의 우울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10% 조금 넘는 노조조직률이 현실적 계급대표성 문제와 미래 과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상황이다. 3·10세대인 현 시기 한국 노동계급은 다양한 시선으로 새 정권의 출발을 기대와 우려 속에 지켜보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한국 노동계급의 요구를 걸고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는 올해 6월 사회적 총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새 정권하에서 각종 요구를 어떤 방식으로 총화하고 힘찬 투쟁으로 관철할지 주목된다. 새로운 정권의 출발로 인해 일정한 대기주의와 대리주의에 기대는 부류도 생길 것이다. 다만 과거의 학습효과를 통해 노동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요구조건을 관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확인될 때까지 토론과 조정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사견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 외에 대기주의와 대리주의에 천착해서는 기대 무산에 따른 눈물만 한 보따리씩 안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요구를 걸고 투쟁을 하며 장미대선의 환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갑을오토텍에서 김종중 열사투쟁이 전개되고 있고, 수많은 지상농성과 고공농성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특히 광화문에서는 27일간 고공단식노동을 한 6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적폐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성주의 외침은 또 얼마나 큰 울림인가. 전국 곳곳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적폐청산 요구는 촛불항쟁이 현재진행형임을 웅변한다.

단언컨대 3·10세대는 새 정권에서 적폐청산이라는 공동의 요구와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촛불항쟁 때보다 더욱 복잡하고 구조적인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쉽지 않은 경로를 거쳐야 할 것이다. 견고한 정경유착의 고리, 즉 자본의 벽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요구를 관철할지는 '제도정치'라는 상수 외에 광장의 힘이 유일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계급은 5월9일 이전과는 결이 다른 각오로 5월10일부터 노동자 조직 힘의 원천인 단결력과 투쟁의 고삐를 다잡아야 한다. 3·10세대의 소임은 그 과정을 통해 역사적 존재의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3·10세대 노동자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 민중의 선봉에 서서 적폐청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역사적 발걸음을 내디딜 순간이다. 역사를 새로 쓰자. 3·10세대.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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