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빛나라 변호사(법률사무소 인정)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7.4.20 선고 2017구단50655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광업소에서 1978년 4월5일부터 1982년 8월16일까지 선산부로 근무하다 퇴사했다. 원고는 2008년 7월2일 A이비인후과에서 ‘상세불명의 감각신경성 난청(양측)’으로 진단받은 후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청각장애 등록을 했다. 원고는 2015년 12월8일 다시 의료법인 B병원에서 ‘양쪽 감각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고 2015년 12월10일 피고 근로복지공단에 이 사건 상병이 소음성 난청에 해당한다며 장해급여를 신청했다. 이에 피고는 2016년 7월6일 “원고는 사업장을 퇴사한 지 3년 이상이 경과했고, 2008년 7월2일 A이비인후과에서 난청 진단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 사업장 퇴사일 및 소음성 난청 진단일로부터 각각 소멸시효 3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부지급결정을 했다.

2.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은 원고의 소음성 난청 장해급여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완성은 인정했으나,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하며 이 사건 처분을 취소했다.

3. 판례평석

가. 소음성 난청에 따른 장해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논쟁 연혁

대상판결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음성 난청의 소멸시효에 관한 논쟁 연혁에 대해 이해가 선행돼야 하므로 이하에서는 이에 대해 설명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2016년 3월28일 고용노동부령 12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별표5] ‘신체부위별 장해등급 판정에 관한 세부기준 2. 귀의 장해 1)청력의 측정 라)’에는 "직업성 난청의 치유 시기는 해당 근로자가 더 이상 직업성 난청이 유발될 수 있는 장소에서 업무를 하지 않게 됐을 때"(이하 '이 사건 조항'이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소음성 난청의 치유 시점을 ‘사업장 퇴사 시점’으로 보는 이 사건 조항에 따라 과거 소음성 난청에 따른 장해급여청구권은 ‘사업장 퇴사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아 왔다.

그런데 이 사건 조항에 대해 "법령의 위임 없이 법규성이 있는 법령에 규정된 ‘치유’ 시기와 다른 치유시기를 규정함으로써 장해급여청구권의 행사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국민에 대한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는 판례(서울고등법원 2014.4.18 선고 2012누21248 판결, 대법원 2014.9.4 선고 2014두7374 판결, 이하 '이 사건 관련 판례'라 한다)가 선고된 이후 시행규칙은 이 사건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개정됐다.

그렇지만 이는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이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부칙 3조(직업성 난청의 치유 시기에 관한 경과조치)가 "직업성 난청으로 개정된 규칙이 시행되기 전에 시행령 25조3항 본문에 따른 진단서나 소견서를 발급받은 근로자에 대한 치유 시기는 별표 5 제2호가목1)라) 개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따른다"고 하면서, 개정 시행규칙 시행 전 진단서를 받은 재해자는 사업장을 퇴사한 지 3년 이상이 경과한 경우 여전히 이 사건 조항의 적용대상이 돼 구제받을 수 없었다. 이 사건 관련 판례에서는 이 사건 조항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했지만 행정기관이 부칙으로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면서 이와 관련한 행정사무 처리는 판결과는 다르게 행해졌다. 사업장을 퇴사한 지 3년 이상이 경과한 이후 조항 개정 전에 소음성 난청으로 진단받은 재해자들은 조항 개정 전에는 이 사건 조항 때문에, 조항 개정 이후에는 부칙 3조로 인해 이 사건 조항을 적용받게 돼 장해급여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 관련 판결의 논리에 의하면 시행규칙 조항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고, 개정 시행규칙 시행 전 소음성 난청 진단을 받고 사업장을 퇴사한 지 3년 이상이 경과한 재해자들의 장해급여청구권 소멸시효도 원칙으로 돌아가 소음성 난청의 치유시점인 진단서 발급 시점을 기준으로 기산해야 한다. 그런데 사업장을 퇴사한 지 3년 이상이 경과한 이후 소음성 난청을 진단받은 재해자들은 그동안 이 사건 조항에 의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장해급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장해급여를 청구하지 않았고, 이 사건 조항이 위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재해자들은 다시 진단서를 발급받아 장해급여를 청구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미 소음성 난청 진단일 다음날로부터 3년 이상이 지나 버린 경우가 다수 있었다. 이들의 청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장 퇴사일 및 소음성 난청 진단일로부터 각 3년이 경과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하면서 장해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이들의 권리 보호에 공백이 발생했다.

나. 소음성 난청 장해급여청구권 소멸시효의 기산점

대상판결은 소음성 난청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이 사건 조항이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원고가 소음성 난청 진단서를 발급한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하면서, 이 사건 조항을 원고에게 적용하도록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부칙 3조 또한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며(민법 166조1항) 이는 원칙적으로 법률상 장애사유가 없음을 말하지만 판례는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 및 소멸시효제도의 존재 이유를 고려해 법률상 장애사유가 없더라도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예외를 인정한다. 이 사건과 같이 행정규칙이 존재하는 경우 그 자체로 법률상 장애사유를 구성하거나 예외에 해당해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지 여부가 쟁점이었으나, 대상판결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시행규칙 존재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아니므로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판시했다.

다. 소음성 난청 장해급여청구권 소멸시효 완성 주장의 권리남용

대상판결은 피고가 이 사건 조항이 시행되고 있었던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아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신의성실 원칙과 같은 일반 원칙을 적용해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영을 배제하는 것에 대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는 법원의 경향을 고려할 때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행정조직 내부의 행정 사무처리 기준인 행정규칙은 대내적 구속력이 있으므로 행정기관이 행정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은 행정규칙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행정규칙의 존재는 행정기관이 시효완성 전에 원고의 장해급여 청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장해급여 청구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것, 나아가 객관적으로 장해급여 청구의 권리행사에 사실상 장애사유가 존재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행정기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다. 이 사건 조항의 삭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소음성 난청 진단을 받은 근로자와 그 이후에 받은 근로자 간에 평등원칙 위반 소지 또한 있으므로, 대상판결은 논리적으로 지극히 타당하다.

라. 결어

대상판결은 이 사건 조항이 개정되기 전에 업무로 인한 소음성 난청 진단을 받았지만 사업장 퇴사일과 소음성 난청 진단일로부터 각 3년 이상이 경과한 다수의 소음성 난청 재해자들에게 소멸시효 완성 여부와 상관없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판결로 사회적 의미가 크다. 다만 피고가 항소할 경우 상급심 판결이 남아 있기 때문에 소음성 난청의 소멸시효를 둘러싼 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법치국가에서 행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행정을 집행해야 한다. 국가가 스스로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해 위법한 시행규칙을 제정·시행해 놓고 이를 신뢰한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법치국가 원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정청은 소음성 난청 재해자들을 충실하게 구제하기 위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해 위법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부칙 3조를 조속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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