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돼 간다. 그간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각계 시민대표와 외부 전문가위원들이 참여해 사고조사와 대책마련 활동을 했다. 진상규명위는 서울시장에게 통렬한 반성을 기반으로 안전대책을 선도적으로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안전과 관련한 서울시의 바람직한 역할을 제시하며 (가칭)노동안전인권선언을 발표하고 지하철 안전의 날(5월28일)로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노사정으로 구성된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도 사고조사와 안전대책 마련을 위한 활동을 했다.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8월25일 1차 보고회, 같은해 12월20일 2차 보고회를 열었다. 1차 보고서에서 안전권고안 30여개, 2차 보고서에서 서울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과 관련한 안전대책 30여개를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서울시는 보고회를 마치면서 2017년 1월 말까지 종합적 지하철 안전대책을 수립해 진상조사단과 함께 이행상황을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났지만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와 두 공사 경영진은 아직까지 2차 권고안을 검토하거나 안전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지하철 통합공사는 5월 말 출범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도시교통본부와 두 공사 경영진은 권고안을 배제한 채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정시운행에서 안전운행으로 안전문화를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사고가 나면 후진적인 징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원인규명으로 예방과 재발방지를 하도록 안전패러다임을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조직문화와 안전문화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교통단체·전문가가 참여하는 노사민정 안전위원회 설치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와 두 공사는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노동안전인권선언이나 지하철 안전의 날 지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기술 분야 조직체계 문제다. 기술 분야 조직체계는 두 공사 경영진이 바뀌면 임의대로 개편됐다. 원칙 없는 권역별 기술사업소 배치 문제로 노사가 수차례 마찰을 빚었다. 일부 부서의 경우 잦은 조직개편으로 도면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진상조사단은 두 공사 통합을 추진하며 기술(전기·궤도·신호·통신·기계·전자·토목·철도장비 등) 분야 전문성이 강화되도록 조직체계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기술 분야는 본사부터 현장 관리소까지 직종별로 조직을 설계해 전문성을 갖추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도시교통본부와 두 공사 경영진은 통합관리소 형태인 안전센터를 고집하고 있다. 도시교통본부는 서울시장에게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 권고안 대부분이 이행된 것으로 보고했지만 실질적으로는 2차 보고서 30여개 권고안은 배제됐다.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두 공사 통합작업에 노사정뿐만 아니라 정책·안전전문가 참여를 제안했다. 도시교통본부는 효율적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마저 수용하지 않았다. 두 공사 통합을 정해진 시간표대로 강행하려는 모습은 안전운행보다 정시운행을 고집하며 사고를 유발하던 관행을 유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효율성과 성과 중심으로 통합에 접근하면 안전은 요원해진다. 통합을 서두를수록 지하철 안전이 위협받는다.

일하는 노동자와 이용하는 시민이 함께 안전한 지하철이 되려면 구의역 사고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에서 권고한 각종 안전대책이 올바르게 이행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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