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기념일이 없다. 국경과 이념을 넘어 일하는 사람들을 기념한 지 100여년을 훨씬 넘겼지만, 우리에게는 멀기만 하다. 여전히 ‘근로자의 날’이고, 현장 노동자 태반이 일터로 나가고 있다. “황금연휴가 시작됐다”거나 “역대 최대 인파가 인천공항에 몰렸다”는 뉴스는 대다수 노동자에게는 남의 일이다.

최근 “노동절에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년부터, 반드시”라는 짧은 답을 남겼다. 필자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이번 5·1절을 기점으로는 반드시 바뀐다’는 새로운 희망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런 추세라면 9일 대통령선거에서 절대다수 노동자와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후보자가 당선되지 않겠나.

무엇보다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 데 노동자들이 나섰다. 대표적으로 한국노총은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권’이라고 공약해 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노동절을 기념하면서 김주영 위원장과 문재인 후보는 ‘대선승리 노동존중 정책연대협약’에 서명했다. 양측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하면 “우리 사회에 노동존중 정신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전 조합원 앞에서 다짐했다.

협약은 정치일정에 맞춘 대표자 간의 의례적인 정치의식이 아니다. 그저 그런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노총 산하 100만 조합원의 총의가 모인 결과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 내내 산하 각 단위에서 19대 대통령선거 지지후보 선정을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했고, 같은달 27일 개표 결과 문재인 후보가 투표 참가 조합원의 47%를 득표해 지지후보자로 결정됐다.

투표 기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조합원 손으로 직접 지지후보자를 정한 것은 우리 노동조합 역사상 극히 드문 일이다.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원양에서 조업 중인 해상조합원들은 안타깝게도 투표에 참가할 수 없었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등 관련법령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통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출신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무려 투표 가능 조합원의 절반이 넘는 35만여명이 관련법과 해당 규약을 준수하며 진행해 값진 결과를 얻었다. 그동안 이만한 대규모 인원이 참여한 투표는 없었다. 그래서 감히 99.9% 이상의 신뢰도를 인정받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한국노총만이 아니다. 민주노총에서도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2천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이 그 어느 때보다 확고히 노동자와 시민을 중심에 둔 정당과 후보자의 당선을 선언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지난겨울부터 대선까지 양대 노총은 실로 역사적인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당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에서는 노동절을 기점으로 전 조직적인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업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후보자 당선을 위해 촌음을 아끼며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정부가 추진할 노동정책에 대한 준비도 요구된다. 사안의 경중과 선후를 가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책협약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당은 집권 즉시 이른바 2대 지침을 비롯한 과거 정부가 해 온 위법한 행정지침을 폐기한다고 합의했다. 정부 업무범위이므로 언제나 가능하고 공공기관이 받는 피해의 정도를 고려할 때 바른 수순이다.

그런데 나머지 공약들은 상황이 다르다.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400쪽에 가까운 메뉴판 같은, 출처를 알기 어려운 백가쟁명 식 공약들을 논리와 비중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일자리 수십만 개를 만들겠다”는 공약부터 검토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정책협약을 체결하고서도 일자리 공약을 여전히 노동공약에, 그것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면 큰 실수다.

정책협약은 “정책연대 협약은 노동존중과 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고 마무리된다. 그리고 협약식에서 문재인 후보는 “의무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제도화하겠다”라는 취지를 밝혔다. 이 요건 모두를 담을 수 있는 과정이자 목적은 바로 ‘노동자가 자유롭게 노동조합원이 되는 권리’의 완전한 보장이다. 어느새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는 수십만 개 일자리’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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