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최근 전문가 82명에게 노동적폐가 무엇인지 물어 그 결과를 공개했다. 다수가 ‘노동기본권 실종’을 지목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사용자 편향적 노동행정, 저임금 노동시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노동공약도 쏟아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전문가들이 뽑은 노동적폐 청산과 관련해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냈는지 들여다봤다. 전문적인 검증을 위해 분야별로 전문가 좌담회를 곁들였다. 4회에 걸쳐 노동적폐 청산 공약과 좌담회 기사를 게재한다.<편집자>

[게재 순서]
1. 노동 3권과 노사관계
2. 고용노동부 및 노동행정 개혁
3. 비정규직 문제
4. 노동시간단축과 저임금 해소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발표한 노동공약에는 어김없이 노동시간단축과 저임금 해소를 위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 장시간 노동의 폐해와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주요 5개 정당 대선후보들은 구체적인 수치와 목표를 내놓고 있다. 로드맵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연평균 노동시간을 2010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1천800시간대로 줄이고,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는 공약이 대세를 이룬다.

“연평균 노동시간 1천800시간은 의미 없어”
상한 설정하고 단시간 노동 문제 해결해야


노동시간단축의 경우 문재인(더불어민주당)·안철수(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후보가 2015년 기준으로 2천113시간인 연간 노동시간을 1천800시간으로 줄이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런데 수치 달성만 맹목적으로 추구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연간 1천800시간대로의 단축”을 강조한다. 사실상 연평균 노동시간이다. 반면 심상정 후보는 “연 1천800시간 상한제 실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평균’과 ‘상한’의 차이는 크다. 연간 2천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평균 1천800시간을 달성하는 것과 아예 1천800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간극이 크다. 2천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많아도 단시간 노동자가 늘어나면 평균이 1천800시간으로 수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후자를 실현하려면 연장근로를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공약에서 주 52시간이 아닌 주 40시간 상한을 목표로 연장근로를 조절하는 방안을 발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심상정 후보는 연장근로시간을 줄여 2021년까지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을 준수하고, 2025년까지 주 35시간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연간 노동시간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연간 초과근로시간 한도를 규정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문재인 후보는 법정 노동시간 상한인 주 52시간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7일 본지가 개최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는 “연평균 1천800시간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은 큰 의미가 없다”며 “근로기준법 50조(근로시간) 취지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이 아닌 '하루 8시간, 주 40시간'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간 1천800시간 노동과 관련한 또 하나의 함정은 단시간 노동자 증가다. 단시간 노동자 비중이 늘어나면 연간 노동시간은 자연히 줄어든다. 연간 1천800시간 노동시간을 달성한 일본이나 네덜란드의 경우 단시간 노동자 증가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풀타임 일자리를 원하는데도 저임금 단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달성한 노동시간단축은 그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활성화 정책에 따라 2013년 188만3천명이던 시간제 노동자는 지난해 248만3천명으로 30%(60만명) 급증했다. 일주일에 18시간 미만을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지난해 127만명을 넘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시간제 근로자가 늘어나는 추세라면 1천800시간의 노동시간은 금방 달성할 수 있다”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 산입범위 확대시 효과 반감
“실업대책, 자영업자 재취업 대책과 연계해야”


대선후보들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데 공감했다. 다만 현실화 가능성 판단에 따라 2020년(문재인·유승민·심상정) 달성과 2022년(홍준표·안철수) 달성으로 나뉜다.

최저임금 역시 단순하게 1만원 달성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재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공약에 담지는 않았지만, 한국노총 정책질의에 답변하면서 “영세기업의 지불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기상여금·복리후생금품 산입 등 최저임금 범위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공약을 동반해야 실효성을 갖는다. 5명의 대선후보들은 △카드수수료 인하 △납품단가와 최저임금 인상을 연동하거나 최저임금 인상분을 원청이 부담하는 방안 △세제지원을 공약했다. 이런 공약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기덕 변호사는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중소기업들이 국외로 나가거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의 70~80%를 보장하는 실업대책이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공약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청 납품단가에 최저임금을 반영하는 것은 굳이 공약이 아니더라도 산업현장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도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의 최저임금에 맞춰 단가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원·하청 관계가 없는 자영업자들이다. 업종 구조조정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재취업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김기선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1만원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사업을 접는 게 합리적”이라며 “그런 분들에게 노동시장 재진입 기회를 찾아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시간 줄어든 저임금 노동자 지원책 ‘전무’
“최저임금 뛰어넘는 임금체계 만들어야”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임금이 적은 노동자들이 연장근로를 통해 소득을 보전하기 때문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배경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소득보전과 관련한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저임금 인상은 유력한 방안이지만 그것만으로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연공급 같은 임금체계를 갖춰 임금이 꾸준히 올라가는 공기업·대기업 노동자들과 달리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곧 임금총액이 된 지 오래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그치는 상황에서 교섭력이 없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의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임금체계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는 중소기업에 최저임금 수준을 뛰어넘는 임금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상정 후보 공약에 업종별 임금산정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있다. 비정규직과 관련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공약이지만, 중소기업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김기선 연구위원은 “연공급이나 직무급 등 특정체계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40~50대가 돼도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임금체계를 노사가 함께 만들어야 하고, 정부가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공약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통상임금 범위를 넓히면 연장근로수당이 상승한다. 사용자들이 연장근로를 자제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김기덕 변호사는 “근기법의 법정 노동시간 규정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할 수단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밖에 없는데도 공약에서 빠졌다”며 “일정 근로일수나 재직자 조건과 무관하게 지급받는 임금은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공약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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