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열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장

고3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이 콜수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신과 케이블방송 업계는 ‘실적’이라는 말로 노동을 수치화해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회사는 이 지표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등급화하고 노동을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한다.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라는 홍양의 문자는 지표에 노동을 저당 잡힌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힘겨운 사투를 보여 준다. 희망연대노조가 ‘지표지옥’에서 비용절감과 실적압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


케이블방송과 IPTV, 인터넷 설치·수리기사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전신주와 건물 지붕에서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은 고역이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이 되거나 해고당하는 파리 목숨이 되는 것도 힘들다. 그중에서도 가장 버티기 힘든 일은 매일 원청이 센터로, 그리고 센터가 기사들에게 가하는 ‘지표 압박’이다.

5개 케이블방송사와 3개 IPTV 회사 등 방송통신기업들은 설치·수리·상담 업무를 외주화했다. 이들 원청 기업들은 고객서비스(CS)를 평가하고 영업목표를 설정해 실적을 평가하면서 하도급업체들의 생사여탈을 결정한다.

원청은 하도급업체들을 상대평가하고 S·A·B·C·D등급으로 나눈 뒤 각종 인센티브를 차등해 지급한다. 일등과 꼴등 센터의 점수 차이가 1점 정도밖에 안 나는 경우라도 원청이 센터에 내려보내는 ‘장려금’ 규모에서 천지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구조 탓이다.

실제 방송통신업체에는 조회시간에 서류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사기를 쳐서라도 영업을 해 오라”고 강요하는 관리자가 있다. 이 구조의 가장 밑단에 있는 노동자들은 ‘업체가 바뀌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바지사장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한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본업인 ‘기술서비스’보다 영업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고객이 “컴퓨터 좀 고쳐 달라”는 식의 부당한 요구를 해도 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대기율 지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즉각 일을 처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컨대 실적압박·고용불안·감정노동·위험의 중심에 지표가 있다.

문제는 방송통신업계의 독과점 구조가 심해지면서 원청 기업들이 하도급업체와 기사들에게 ‘가입자 뺏기 영업’을 강요하는 강도 또한 강해졌다는 점이다.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티브로드·딜라이브 등 희망연대노조 소속 노조가 있는 회사만 보더라도 원청이 센터를 평가하는 지표 내에서 CS와 영업 비율은 6대 4에서 4대 6 수준으로 바뀌었다. 영업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영업진도율이라는 지표를 통해 영업 과정을 평가하는 원청도 생겼다. CS와 영업 관련 장려금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설치·AS 수수료를 삭감하는 것이 최근 원청의 정책이다. 원청은 기술보다 서비스, 서비스보다 영업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LG유플러스는 하도급업체와 기사들에게 ‘홈 솔루션 디자인(HSD)’이라는 이름으로 사물인터넷(IoT)과 업셀링(up selling)을 유도한다. 그런데 하도급업체가 HSD 지표에서 S등급을 받으려면 영업목표 대비 130% 이상을 달성해야 한다. A등급은 110% 이상, B등급은 100% 이상, C등급은 70% 이상, D등급은 70% 미만이다. 원청이 내려보낸 영업목표의 99%를 달성하더라도 C등급으로 평가된다. 원청의 지표는 노동자를 쥐어짜고 노동자들을 경쟁시키는 데에만 활용된다.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지표는 단 하나도 없다. 원청은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원·하청 관계를 통해 ‘갑질’만 해 왔다. 그리고 이 같은 지표들은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부터 홈서비스센터 기술서비스 노동자들까지 적용범위를 넓히고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표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노동자, 고객을 만나면 등쳐 먹을 생각부터 해야 하는 것이 싫어 회사를 다니지 못하겠다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