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최근 전문가 82명에게 노동적폐가 무엇인지 물어 그 결과를 공개했다. 다수가 ‘노동기본권 실종’을 지목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사용자 편향적 노동행정, 저임금 노동시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노동공약도 쏟아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전문가들이 뽑은 노동적폐 청산과 관련해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냈는지 들여다봤다. 전문적인 검증을 위해 분야별로 전문가 좌담회를 곁들였다. 4회에 걸쳐 노동적폐 청산 공약과 좌담회 기사를 게재한다.<편집자>



[게재 순서]

1. 노동 3권과 노사관계

2. 고용노동부 및 노동행정 개혁

3. 비정규직 문제

4. 노동시간단축과 저임금 해소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모두가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공약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유력 대선후보들이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고용을 약속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직무형 정규직화 공약을 내놓았다.

공약이나 실천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비정규직 규모 축소와 차별해소를 외면하는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8월 기준 통계청이 밝힌 비정규직 규모는 644만명이다. 노동자 3명 중 1명(전체 노동자의 32.8%)이 비정규직이다. 노동계는 874만명(전체의 44.5%)으로 추산한다.

대선후보가 내놓아야 할 노동공약 1위 '비정규직 해법'

<매일노동뉴스>가 1일 주요 5개 정당 대통령후보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을 살펴봤다. 지난달 노동문제 전문가 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4.1%인 28명이 '비정규직 남용·확산'을 우리 사회 노동적폐로 지목했다. '노조 만들기 어려운 제도'에 이은 2위였다.

대선후보들이 반드시 내놓아야 할 노동공약을 뽑는 설문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1위를 차지했다. 82명 중 39%인 32명이 선택했다. 노동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중시했다.

대선후보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 해법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다.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고용은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가 공약했다. 계속 필요한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쓰지 말고 정규직을 채용하라는 얘기다. 실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는 항상 필요하고 계속 해야 하는 업무인데도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25일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부문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전환과 채용은 법 개정 없이 행정부 의지만으로도 가능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책 추진의지만 있으면 실현 가능한 공약이라는 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상시·지속 업무에 정규직을 채용하고 차별처우만 금지해도 비정규직 규모가 상당히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를 앞세운 대선후보 공약이 실효성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약속했다. 여름 또는 겨울처럼 특정한 시기에 일감이 몰리는 계절적 사업이나 임신·출산 휴가 등에 따른 일시적 결원에 대한 한시적 충원 같이 특정 사유가 발생할 때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문재인·안철수·심상정 후보는 생명·안전업무 비정규직 사용 금지도 공약했다.

비정규직 총량 제한

OECD 평균 또는 업종·기업규모별로


비정규직 총량을 제한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말했고, 유승민 후보는 “업종과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비정규직 고용 총량을 설정해 고용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후보 공약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안철수 후보가 밝힌 ‘직무형 정규직’이다. 안 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해소를 위해 공공부문에 직무형 정규직을 도입하고 사회복지고용공단을 설립해 이들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직무형 정규직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기존 정규직과 다른 새로운 직무·임금체계를 만들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거나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조돈문 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해소하자고 하는데, 다른 범주의 고용형태를 만들겠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수미 전 의원은 “직무형 정규직은 차별을 당장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소 늦추자는 의미로 들린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의 최영기 미래준비본부 좋은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직무형 정규직이 직무와 임금설계를 달리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정규직과 다르지만 고용이 안정된다는 측면에서 더 나은 고용형태”라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차별 확인되면 정규직 간주

유승민 화끈 공약 눈길


차별해소에는 후보 간 이견이 없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홍준표 후보도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격차완화를 위해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원·하청 간 격차해소를 위한 성과공유제 등 상생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고용유연화를 주장하는 홍 후보는 '정규직 양보론'에 초점을 두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대부분의 후보가 동의했다. 차별해소와 관련해서는 유승민 후보 공약이 파격적이다. 유 후보는 “동일노동 범주를 넓게 해석해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차별이 확인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면서 징벌적 배상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 격차를 해소해 질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겠다”며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가칭) 제정을 약속했다. 심상정 후보는 “업종별로 임금산정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적정임금 보장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동일 사업장 내 노동자 임금차별 해소를 위한 특별법 제정도 약속했다.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에는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가 동의했다. 홍준표 후보는 원청 사업장 노사협의회·고충처리위원회에 파견·사내하도급 노사 대표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특수고용직의 경우 문재인·심상정 후보가 ‘노동 3권 보장’을, 안철수 후보가 ‘노동자성 인정’을 공약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 공약을 보면 개수나 실행방법, 의지 표현 정도에서 심상정 후보가 다른 후보를 앞선다"고 입을 모았다. 보수후보를 자처한 유승민 후보가 안철수 후보보다 진보적인 공약을 내놓은 것도 눈에 띈다. 문재인 후보는 노동계 요구를 대체로 수용했다.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공약만 놓고 보면 “해법 마련에 부족함이 크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실행의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전환과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공약했다. 그러나 임기 4년 동안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조돈문 교수는 “후보들의 공약은 전반적으로 괜찮지만 약속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공약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은수미 전 의원은 “예전에는 기간제·파견 문제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차별을 낳는 핵심 이슈였지만 지금은 고용하지 않고 착취하는 하청사회가 더욱 주요한 문제로 등장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플랫폼 노동처럼 새롭고 다양한 고용관계가 등장할 텐데, 후보들 공약에 대비책이 없다는 것은 한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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