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산업재해 통계가 최근 발표됐다. 원청·하청 산업재해 통합 통계가 그것이다. 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11일 발표했다. 대상은 2015년 기준 조선·철강·자동차·화학업종 51개사 원·하청업체였다.

먼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원청노동자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망만인율이 8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수긍이 간다. 문제는 재해율 통계다. 사내하청 노동자에 비해 원청노동자 재해율이 4배나 높았다. 사망사고율과 재해율이 따로 노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위험업무가 하청노동자에게 넘어갔을 개연성이다. 하청노동자의 높은 사망만인율이 그 증거다. 반면 원청에 비해 하청노동자 재해율이 낮은 것은 산재은폐로 해석한다.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원청노동자는 산재 신고부터 처리까지 거리낌이 없다.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고용상

불이익을 우려해 치료만 받고 현장으로 복귀하기 일쑤다. 이런 방식의 사고 처리를 ‘공상’이라 한다.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 재해는 산업재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일하다 목숨을 잃어야만 산재로 기록되는 셈이다.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는 산업재해 통계 착시현상의 단면을 드러낸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전수조사가 아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시야를 넓혀 보자. 정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 통계는 신뢰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9일 산업재해율이 0.49%, 사망만인율이 0.96%로 전년보다 감소했다는 2016년 산업재해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산업재해 통계를 산출한 이래 처음으로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이 각각 0.4%대, 0.9%대에 진입했다. 노동부는 이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사망만인율보다 낮은 재해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3년)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이 4배나 낮은 반면 사망만인율은 3배나 높다.

미국·독일 등 OECD 주요국의 경우 재해율이 높고 사망만인율이 낮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통계만 뒤집혀 있다. 왜 그런걸까. 우리나라 통계당국의 산업재해 통계 기준의 허물을 짚는 건 논외로 하자. 그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원·하청 합산통계 결과를 떠올려 보면 된다.

원청노동자에 비해 하청노동자의 산재 신고율이 낮으니 전체 재해율도 덩달아 낮아진다. 산재 다발업종인 건설·제조·서비스업에서 공상처리는 다반사다. 광범위한 산재은폐 탓에 통계 결과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감춰지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최근 정부는 산재은폐 사업주를 1년 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기로 했다. 산업재해율이 감소했다는 자찬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통계 산출을 위한 조치다.

지난 26일 매일노동뉴스와 양대 노총·노동건강연대는 2016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현대중공업을 선정했다.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11명 가운데 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에도 살인기업에 선정돼 노동부로부터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그럼에도 하청노동자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산재로 인한 수난은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된다. 30대 기업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다.

19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생명안전·산업안전을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겪은 터라 후보들은 생명안전에 관해 의미 있는 공약을 쏟아 냈다. 그런데 산업안전 공약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후보들 모두 안전업무 외주화를 금지한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후보들의 산업안전 경시가 산업재해 통계 착시효과 탓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나마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이 눈에 띈다. 심 후보는 산재가 집중된 특수고용직·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노동 3권 보장과 산재보험 확대, 하청업체 산재 원청 책임강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 등 종합적 처방을 내놨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까지 포함했다. 여기에 산업재해 통계 기준을 일신하는 방안이 덧붙여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도 쟁점은 구태의연한 색깔론 시비와 안보논리 일색이다. 이제라도 후보들이 뒷심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노동·산업안전 정책을 치열하게 논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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