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환 현대차 아산공장 해고자

“375일 무단결근으로 귀하에게 해고를 통보합니다.”

지난해 12월20일 현대자동차에서 받은 해고통보서 내용이다. 이에 불복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했고 28일 첫 심문회의가 열린다. 무려 375일을 무단으로 결근하고도 부당해고를 주장한다고 하니 이상하게 여겨질 만도 하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17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0년 8월 현대차 아산공장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당시 하청노동자의 처지는 열악했다. 시급은 최저임금을 조금 웃돌았고 노동강도는 매우 셌다. 회사와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을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라인운영 인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급기야 2003년 3월 월차를 쓰려던 노동자가 관리자에 의해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소위 ‘식칼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하청노동자의 억눌렸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사무장으로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비정규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는 ‘그림의 떡’이었다. 몇 달 후 첫 번째 해고를 당했다. 하청업체가 해고하는 형식이었지만 그 배후에 현대차가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현대차는 공장 출입을 막고 노조활동을 탄압했다.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결국 법원에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를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을 공장 밖에서 복직을 위해 싸웠다.

다행히 2015년 2월 대법원은 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남들처럼 작업복을 입고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대차가 법망을 피해 ‘고용이행’ 절차라는 꼼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법원은 2002년 8월부터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는데, 현대차는 신입사원과 마찬가지로 입사절차에 응하라고 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단체협약도 무시하고 1년6개월 대기발령을 내렸다. 부당한 인사명령을 거부하자 회사는 ‘장기 무단결근’이라며 나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울산공장 최병승씨도 같은날 927일 무단결근(?)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현대차가 법원 판결을 비웃고 해고를 남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 현대차 울산공장 최병승 판결 이후 완성차·철강·부품사 등 제조업에 만연한 불법파견에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들은 단 한 번도 불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버젓이 불법으로 사내하청을 고용하거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촉탁계약직을 주기적으로 해고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법 위에 현대차가 있다”고 절규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정몽구 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127억원 등 수백억원을 상납하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사법처리는 요원하다.

조금 있으면 1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밋빛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무수한 공약이 남발됐다. 하지만 열악한 현실은 단 1%도 나아지지 않았다. 광화문 광고탑 위에서 10일 넘게 단식 고공농성 중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이들의 호소에 전국의 노동자들이 응답해야 한다. 박근혜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쫓아낸 것처럼 노동현장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 항쟁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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