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생활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수삼일 간격을 두고 대선후보 토론회를 꼬박꼬박 챙겨 보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그럴 것이다. 과거에는 크게 경험하지 못한 토론선거다. 벌써부터 어떤 후보는 토론의 덕을 보고 있다고 하고, 어떤 후보는 잔뜩 쌓아 뒀던 지지율이 반토막이라고 난리다.

토론은 매력적이다. 뭐니 뭐니 해도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아주 거대한 일생일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어떻게든 상대방을 이겨 보려는.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다. 나라를 건 한판 승부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어찌 토론이 재미있지 않을까. 유권자들이 각자 지지하는 후보에게 자신을 대입하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 된다.

이번 토론을 보면 형식상으로는 나름 공정하다. 실제 지지하는 유권자가 얼마건 정당 규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언론만 하더라도 어떤가. 이른바 지지율이나 국회의석수에 따라 보도 비중과 양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 언론환경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우세자를 더 우세하도록 만들고 만다. 그런데 토론에서는 열세자가 얼마든지 역전을 할 수 있다. 무기대등의 룰이 적용된 결과다.

토론은 한방향이 아닌 유권자와 후보 간 쌍방향의 매우 뜨거운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혹자들은 지지후보 공약을 반복해서 보고 듣는 것이 낫지 않냐고 묻는다. 활자화된 공약집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굳이 비싼 시간을 들여 토론할 필요가 없다는 회의론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큰 착각이자 오류다. 격론 과정을 거치면서 유권자는 후보들을 상대로 이해와 실망을 수시로 반복한다. 한방향의 활자보다 지지후보 공약에 대한 깊이를 더한다. 말이야말로 뜨거운 매체다. 수십 페이지의 밋밋한 공약집도 토론자의 언어를 거치게 되면 요철이 생겨나고 음영이 뚜렷해지지 않는가. 감정이 실린 뜨거운 고음으로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 번 강조하면, 그저 공약집에서 같은 분량을 차지하는 그런 공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 않겠나.

그래서인지 필자도 알게 된 게 꽤 많다. 어떤 후보가 진정성을 가지고 공약을 발표했는지, 노동과 노동자를 제대로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당선된 후 시민과 노동자를 위해 어떤 소명으로 일할지를 말이다. 이번 대통령선거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이 내린 준엄한 명령의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지도 토론에서 보인다.

어떤 후보는 공약집에 그럴듯한 노동공약을 넣었지만 정작 해당 주제가 열려도 꺼내 놓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과 과감한 선동에 열을 올린다. 아마도 어떤 노동공약을 했는지 후보 자신도 모르지 않을까. 이게 바로 거짓공약이다.

어떤 후보는 무지와 거짓을 넘어 노동을 적으로 단정했다. 노동조합을 없애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침을 튀기면서 핏대를 올린다. 노동조합에 대한 담담하고 냉정한 평가로 볼 수 없다. 진정한 적의를 느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후보가 과연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자를 우리나라를 책임지겠다는 대통령후보라 할 수 있는가.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알려진 후보의 토론수준도 기대 이하였다. 지난 어느 토론에서는 “귀족노조의 일자리 세습은 안 되죠?”라는 한 후보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공공부문 시중노임단가를 알고 계십니까?”라는 다른 후보의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선거까지 2주나 되는 긴 시간이 남았다. 이상과 같은 까닭으로 많이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노동자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한 이들은 이 기간을 더욱더 소중하게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5월9일 이후에는 용서가 없는 실전의 나날이 펼쳐진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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