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남부지법 2017.3.31 선고 2016가합111684 판결

1. 사실

2016년 7월15일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인사발령이 있었다. 대상자(원고)는 본사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 소속 일반직 기자였고, 제주방송총국으로 파견 및 전보를 명하는 인사발령이었다. KBS 내부에서는 물론 언론노조·기자협회까지도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를 규탄했다. 원고는 인사발령 이틀 전인 13일 한국기자협회보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청와대 보도개입 문제에 관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간의 통화 사실을 KBS가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인사발령 당시 원고는 본사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로 인사발령된 지 4개월이 지난 상태였고, 특별히 지방근무를 신청한 바도 없었다. 제주방송총국으로 인사발령된 원고는 자신에 대한 인사발령 처분이 부당하다며 KBS를 상대로 가처분소송을 제기해 서울남부지법에 인사발령 효력정지 결정을 받아 본사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에 복귀해 근무해 왔고, KBS의 본안제소명령 신청에 따라 원고는 인사발령 무효확인을 구하는 본안소송을 서울남부법원에 제기했다.

2. 주장

원고는 인사발령이 기자협회보 기고문 게재에 대한 보복행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KBS(피고)는 제주방송총국 근무 기자를 서울 근교로 배치해야 할 업무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고는 기자협회보 기고문 게재를 이유로 한 인사발령이라면 인사발령의 업무상 필요가 인정될 수 없다고 봤다. 피고는 피고의 업무상 필요가 있어 단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년 전부터 서울 근교 근무를 신청해 왔던 제주방송총국 소속 기자가 있었는데 그 기자를 서울 근교 근무로 인사발령하면서 불가피하게 제주방송총국으로 원고를 인사발령하게 된 것이라고 내세운 것이다.

전보·전직 등 인사발령은 확고하게 사용자의 인사권한에 속한다고 법원은 판결해 왔다. 즉 판례는 사용자가 업무상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등에 위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해 왔다(대법원 1998.12.22 선고 97누5435 판결, 대법원 2000.4.11 선고 99두2963 판결). 근로계약관계에서 임금 등 근로조건은 노사 당사자의 합의로 정해지는 것이지만, 사업장에서 근로자를 사용하기 위한 배치전환 등 인사발령은 사용자의 권한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법원 판례는 사용자의 인사발령이 근로기준법 등 법 위반, 권리 남용이 아닌 한 정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전직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하는 인사발령은 부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판례는 이를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의 인사발령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정당성을 결정짓는 것이고, 인사발령 처분을 받은 근로자는 이에 집중해 다투어야 한다.

그리고 전직 등 인사발령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해서는 판례는 전직처분 등의 업무상 필요성과 전직처분 등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교량하고, 근로자측과의 협의 등 그 전직처분 등의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라고 판시해 왔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KBS 제주방송총국으로의 인사발령 처분이 업무상 필요가 없는 외에도 피고의 업무상 필요에 비해 원고의 생활상 불이익이 현저히 크고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 등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위 업무상 필요가 존재하는 외에 제주방송총국에 인사발령 직후 사택 제공 등으로 생활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3. 판결

전직처분 등 인사발령의 정당성과 관련해 판례가 사용자의 업무상 필요와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교량해 판단한다고 해서 곧바로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이 크다는 점을 강조해서 비교·교량의 문제로 접근해 주장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는 전직 등 인사발령을 단행하고서 그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근로자에 대한 일정한 보상을 통해서 생활상 불이익을 감쇄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사건에서도 KBS는 사택 제공, 여비 등 편의 제공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미혼인 원고는 경인방송총국에서 근무할 때에 비해 생활상 불이익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근로자는 자신에 대한 사용자의 전직 등 인사발령이 업무상 필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주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업무상 필요가 없거나 그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을 부각시켜야 한다. 원고는 이 사건에서 인사발령 직후인 지난해 7월18일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들이 “부당인사라구요? 무엇이 부당인사입니까?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라고 사내게시판 글을 내세워 기고를 문제 삼은 인사발령이고, “임명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전보할 수 없”도록 한 인사규정에 반하며, 피고가 발표한 정기순환전보 실시계획 기준에도 반하는 지방발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사발령이 있고 나서 경인방송센터장 등으로부터 인사발령 경위 등에 관한 설명을 들은 외에 사전에 협의는 전혀 없었고, 급작스런 제주발령으로 제주로 주거지를 이전함에 따른 여러 가지 생활상의 불이익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김도현)는 이러한 원고의 주장을 모두 인정해 “이 사건 인사발령은 피고의 업무상 필요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원고의 이 사건 기고문 게재를 이유로 이뤄진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한 후 “원고가 입게 될 생활상 불이익은 피고의 업무상의 필요를 현저히 초과하는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인사발령을 내림에 있어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다”며 “이 사건 인사발령은 사용자가 가지는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일탈해 이뤄진 것으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결했다(서울남부지법 2017.3.31 선고 2016가합111684 판결).

4. 평가

판결문은 이 사건 인사발령이 무효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용자의 배치전환 등 인사발령 처분이 무효라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근로계약관계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사용하는 법률관계고 근로자 사용에 대한 사용자의 권한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근로관계를 설정하거나 종결하는 법률행위가 아닌, 사용자의 근로자 사용관계에서 근로자가 부당성을 주장해 법적으로 다투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근로자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통한 통제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사건에서도 인사규정 등 회사 제규정, 기준 위반이 피고의 업무상 필요와 관련해 원고의 주장 근거가 됐다. 지금까지 채용·해고 등에 비해 배치전환 등 인사발령에 관해서는 근로자 보호를 위한 통제가 부족한 것이 현실인데 노동자·노동조합은 이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사건에서 원고는 기고문 게재를 이유로 한 인사발령이기에 인사규정 등 위반이 없었더라도 권리남용이고 부당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사실이 폭로되면서 비롯됐다. 겨우내 촛불집회를 통해 마침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은 탄핵과 구속으로 심판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국정농단에 적극·소극적으로 관여했거나 알고도 침묵했던 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와대의) 보도개입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인 양 외면하고 있는 바로 그 침묵”은 “KBS를 집어 삼켰다”고 한 원고 기고문(정연욱 <침묵에 휩싸인 KBS … 보도국엔 ‘정상화’ 망령>, 한국기자협회보 2016년 7월13일)의 비판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이다. 그 침묵을 비판한 기자의 인사발령은 무효라고 판결받았지만 침묵의 세상이 위법하다는 심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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