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누가 뭐래도 오늘 우리의 시간은 선거로 흐른다. 낡은 어제의 세상을 묻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대통령 후보자들은 날마다 외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박근혜 없는 이 위대한 2017년 봄이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선거의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 겨우내 거대하게 타올랐던 촛불집회까지도 그렇다. 주권자 국민의 그 직접 행동은 국민을 대신하는 권력을 선출하는 대선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촛불광장은 어느새 국민행동의 광장에서 선거운동의 광장으로 바뀌었다. 이 나라에서 국민은 직접 행동하는 세상의 주인에서 대통령 후보자들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 돼서 그들의 선거운동을 관전하고 있다. 이렇게 2017년 봄, 촛불시민혁명이라던 국민의 시간은 가고 국민을 위한다는 권력의 시간이 오고 있다. 그리고 후보자들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 노동자도 포함돼 있다고 노동 관련 공약을 쏟아 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 주요 후보자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TV토론에 참여하는 5명의 후보자 중에서 노동 관련 공약이 가장 적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임기 내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겠다 하고,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격차완화를 위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며, 고용 유연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노사관계 질서를 형성해 기업경쟁력 강화 및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하고, 원·하청 간 격차해소를 위한 성과공유제 등 상생협력을 강화하며, 파견근로자 등의 권리보호를 위한 근로자 참여제도를 혁신하고, 특별히 “강성 귀족노조 고용세습 등 불합리한 노동관행 혁파와 편향된 이념의 노조 개혁”를 10대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준표는 선거 유세와 TV토론 등에서 틈만 나면 민주노총·전교조 등 강성 귀족노조를 혁파하겠다고 외쳐 대고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민주노총 강성 귀족노조와 그에 편승한 좌파 정치세력 탓이다. “귀족 강성노조를 혁파해서 기업을 유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복지를 실행하고, 이를 통해 늘어난 예산을 바탕으로 서민복지에 치중하겠다”고 하는 그는, 이번 대선을 민주노총 강성 귀족노조, 그에 편드는 좌파 정치세력과 자신의 싸움으로 그리고 있다. 그에게는 자본과 권력에 강력히 맞서 조합원 고용보장과 임금 수준 향상 등 노동자권리를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자주적으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은 중소기업·비정규직과의 격차 해소, 기업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혁파해야 할 대상이다. 홍준표에게 노동조합은 정리해고를 실시하도록 협의해 주고 중소기업·비정규직 수준으로 임금 삭감에 합의해 주는 어용노조를 말한다. 민주노조·자주노조는 홍준표의 세상에서 노동조합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홍준표의 세탁기에 넣고 돌려져 어용노조로 세탁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를 창출하며, 1천800시간대의 노동시간을 임기 중에 실현하고, 법정 최장 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준수하며, 비정규직 차별금지법 제정 등으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축소하며, 동일기업 내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도록 강제하고, 사내하청에 대한 원청기업의 공동고용주 책임을 지도록 법을 정비하겠다는 등의 노동 관련 공약을 10대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국가 임금직무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 자격제도를 정비해 직무와 전문능력으로 평가받는 체계를 구축하는 등 공정한 보상시스템 구축을 통한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공공부문 ‘직무형 정규직’ 도입 후 민간부문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 근로자 지원을 위한 ‘근로자지원센터’를 설립하며 공공조달제도 개선을 통해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기업체에 불이익을 부과하는 등으로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며, 포괄임금제와 고정 초과근무 관행을 개선하고 1일당 11시간 이상의 최소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하며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교대제 개편을 적극 지원하는 등으로 연간 1천800시간대의 근로시간단축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도모하고, 근로감독 강화 및 최저임금법 위반, 임금체불 등에 대해 강력 대처하고 노동인권 및 직업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등으로 사회적 약자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겠다는 노동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안철수 후보의 막연한 공약을 읽다 보면 문재인 후보의 노동관련 공약이 법·제도 정비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문재인의 공약은 지금까지 노동계가 제기해 왔던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요구를 많이 담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을 읽기까지는 말이다.

심상정의 공약을 읽고서는 더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으로 기간제·사내하청·파견제 등 모든 비정규직의 채용 금지,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모두 고용, 무분별한 간접고용 규제, 불법파견 근절과 외주화·도급화 금지, 간접고용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법적 책임을 지우고 단체교섭 의무화, 공공기관과 대기업부터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중소기업은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정규직 전환에 대한 지원 확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기 위해 업종별 임금산정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차별을 금지하고 적정임금 보장,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4대 보험 적용은 물론 노동 3권 보장. 무자본 소유자의 편법적 사업자등록 금지 등 특수고용 제한 등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지금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해소를 위해서 논의해 왔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경영상 해고요건 강화, 저성과자 해고 지침 폐기, 비자발적 해고 금지, 해고 전 부당한 인사명령 무효화, 업종별 임금산정 가이드라인, 임금피크제와 성과급제 지침 폐기, 취업규칙에 노사공동결정제 도입,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가구생계비 포함 최저임금 설정기준의 합리화,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단속 및 처벌 강화, 고위 임원 최고임금법, 원·하청 간 초과이익공유제를 통해 하청·협력업체 노동자 임금 인상에 사용, 포괄임금제 금지, 성별 고용·임금실태 공시제 등 고용안정 및 소득불균형 해소에 관한 공약도,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 노동과 1주(7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연장근로(휴일포함)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준수(노동부 불법적 행정지침 폐기), 연 1천8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단계적으로 주 35시간 노동제를 추진해 일자리 나누기와 건강하고 휴식 있는 삶 보장, 5시 퇴근법 도입, 퇴근 이후 및 휴일 업무지시 제한, 국경일과 공유일 유급휴일화 등 연간 30일 이상 유급휴가 보장 등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공공부문 일자리 100만개 등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현재 수준에서 이 나라 노동자가 바랄 만한 것, 그야말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위한 대선 후보의 공약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노동자권리에 관한 노동관련 공약을 읽다 보니 노동에 대한 후보자들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든 후보자들의 공약에도 한 가지 공통된 것이 있다. 모두가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노동자권리를 실현해 주겠다고 공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위해 실현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노동자권리의 수준은 서로 달리하고 있지만 노동자를 위해 자신이 노동자권리를 실현해 주겠다고 하는 것은 다르지가 않다. 어떤 후보자보다도 당당하게 노동을 주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심상정 후보는, 교사·교수·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특수직고용자 노동자성 등 노동 3권 보장, 간접고용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으로 교섭권 보장, 파업을 무력화하는 각종 조치(손배·가압류, 업무방해, 직장폐쇄, 대체인력,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시정, 노조설립신고서 반려 금지, 산별교섭 의무화, 단체협약 효력 확장, 노동이사제 도입를 공약해서 노동기본권 보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 점에서 다른 후보자들과 다르다.


3. 이 세상은 ‘노동자를 위하여’를 수도 없이 공약해 왔다. 사용자 자본에 당당히 맞서 노동자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주노조를 탄압하는 파쇼권력조차도 노동자를 위해 보다 많은 노동자권리를 주겠노라고 공약해 왔다. 히틀러·무솔리니 등 파쇼권력자들이 노동자권리를 말살했던 것이 아니다. 스스로 ‘노동자를 위하여’를 끊임없이 외치며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노동자 스스로 세상의 주인으로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조합 등 노동자단체·노동자의 정당을 조직해서 투쟁하는 걸 용납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권리를 공약하고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저 엄혹했던 1970년대 독재자 박정희도 ‘노동자를 위하여’를 말하고 어용노조가 아닌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따지고 보면 오늘 노동자권리 중 최저임금제·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제 등 많은 것이 노동운동이 주창해서 도입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권력이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후보 홍준표조차도 ‘노동자를 위하여’를 공약하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성과공유제, 파견근로자 보호, 근로자 참여제도를 말한다. 그러니 ‘노동자를 위하여’로는 그 권력을 가를 수가 없다.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로 갈라진다. 노동운동을 적대시하느냐, 방임 내지 관용하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보장하느냐로 그 권력의 성격을 규명할 수가 있다. 그 권력이 파쇼인지 아닌지는 이렇게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건 노동운동에 대한 관용과 보장을 넘어서 노동자 스스로 세상의 주인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보호 대상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을 넘어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실제로 당당히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세상이다.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사용자 자본에 당당히 대등하게 임금 등 노동조건에 관해 교섭 내지 협의해 계약 체결을 할 수가 있고, 사업장 밖에서 국가 권력의 주인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위한 공약은 노동자 스스로 주장하고 행동해야만 실현할 수 있다. 이런 세상 앞에서 나는 심상정의 공약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니 아직 우리 노동자는 갈 길이 멀고, 노동운동은 대선만 관전하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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