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8.19 월 08:00
상단여백
HOME 피플ㆍ라이프 인터뷰
[차수련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노동할 권리 십수 년 박탈당해 … 이젠 돌아가겠다”98년 조합원 고용안정·민주노조 사수 위해 체결한 별도합의가 족쇄로 작용
▲ 정기훈 기자

한양대의료원 노사와 차수련(58·사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998년에 합의한 별도합의서(복직합의서)가 최근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합의문은 차수련 전 위원장이 의료원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상급단체 전임활동만 하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 전 위원장은 지난 21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의료원이 나를 현장에서 떼어 놓아 노조를 약화시키려고 그런 합의를 제안했던 것”이라며 “현장복귀를 위해 단식투쟁과 파업까지 하면서 싸웠지만 결국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차 전 위원장이 의료원에서 최근까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오전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만난 차 전 위원장은 전후 배경을 상세히 해명했다. 인터뷰는 차 전 위원장 요청으로 이뤄졌다.

- 98년 한양대의료원 사측과 노조, 차수련 전 위원장(당시 조합원) 사이에 맺은 합의서가 공개됐는데.

“1983년 의료원에 입사해 87년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87년과 89년 두 번에 걸쳐 파업했다. 90년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활동을 이유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돼 1년 넘게 수배생활을 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다. 도망 다니며 애를 낳고 키웠다. 아이 돌이 지난 후 자진출두를 했다. 94년 해고자 신분으로 다시 노조위원장에 당선했다. 95년 파업을 한 끝에 복직을 약속받았다. ‘2년 후’가 조건이었다. 그러나 사측은 97년에도 복직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단식투쟁과 파업이 이어졌다. 결국 의료원에 공권력이 투입됐다. 간부들의 해고와 대량징계, 손해배상·가압류로 노조가 와해 직전까지 갔다. 그러다 나온 것이 지금 논란이 된 98년 별도합의서(복직합의서)다.”

복직시켜 줄 테니 상급단체 활동만 하라는 의료원

- 별도합의서 내용을 설명해 달라.

“차수련을 복직시키되 현장업무 복귀는 하지 않고 상급단체에서만 전임으로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양대의료원에서 노조 관련 업무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항도 포함됐다. 쉽게 말해 ‘병원에 오지 말고 상급단체 활동만 해라. 그러면 복직시켜 줄게’가 핵심이다. 단서 조항으로 ‘의료원과 노조, 차수련의 갱신합의가 없는 한 이 합의는 계속 유지되며, 당사자 일방이 파기할 시에는 상대방은 그 책임을 묻는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는 내용도 있다. 현장업무 복귀를 요청하면 책임을 물어 해고하고 임금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 합의 배경을 모르면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 의료원의 요구를 명명백백하게 거부했다. 상급단체 활동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 복귀하겠다고 했다. 나를 현장에서 떼어 놓아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의료원이 어떻게든 노조를 없애려고 하던 시기였다. 노조를 지키려던 나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 그렇다면 왜 합의를 했나.

“당시 의료원측은 경영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계획을 내비쳤다. 고용불안을 조성한 것이다. 의료원측의 끈질긴 탄압에 조합원들이 상당히 위축돼 있었다. 솔직히 파업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파업을 앞두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으로 의료원이 내밀었던 게 별도합의서였다. 내가 복직조건에 합의만 하면 노조를 인정하고 구조조정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동계 여러 선배들과 상의했다. 노조와 조합원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마지막까지 버텼다. 결국 고용안정과 손배 가압류·징계 철회, 노조 정상화를 위해 복직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2004년부터 노조 전임활동을 그만뒀는데 임금은 의료원에서 계속 받았다.

“의료원측이 현장복귀를 계속 반대했다. 당시 몸이 심하게 아팠다. 계속된 농성과 단식, 수배와 수감생활로 생긴 신부전증과 저혈압증으로 병원에 수차례 실려 갔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생각했다. 남편도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현장복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는 것, 그것이 바로 사측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복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조를 만들고 이끌었던 선배 노조활동가가 당당히 현장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게 나의 마지막 남은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텼다. 몸이 아파 너무 힘든 시기였다.”

"사측 족쇄, 이제는 끊어 내겠다"

- 일하지 않고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고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노동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항상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의료원이 복귀에 반대했다. 간호사로 병원에 복귀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대한간호협회를 개혁하는 것이다. 협회장 선출을 직선제로 바꿔 간호사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권익을 지켜 주고 싶었다. 간호사를 대변해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고 사회공익에 기여하는 협회로 만들고 싶었다.
노동자로 일할 권리와 나의 꿈을 의료원에 의해 박탈당한 채 정신적 고통을 받고 살았다. 이제는 현장으로, 조합원 곁으로 돌아가 간호사로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 그리고 탄압을 받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끈질기게 버텨 내면 제자리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 현장에 복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2010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타임오프제) 제도가 시행되면서 현장복귀를 강하게 희망했다. 의료원과 노조는 8일간의 파업 끝에 ‘2010년 11월1일부로 차수련을 수술실로 발령낸다’는 잠정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의료원측은 협상 막판에 이를 뒤집었다. 나에게 명예퇴직을 요구했는데,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의 현장복귀 문제만으로 파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98년에 맺은 별도합의서(복직합의서) 갱신을 포기하고 의료원측과의 교섭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 의료원은 왜 차수련 전 위원장의 현장복귀에 반대하나.

“80~90년대 ‘노조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나를 현장에서 떼어 놓으려 한 것이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고, 의료원에서도 복귀를 반대하지 않았다. 잠정합의안까지 나오지 않았나. 그런데 여러 경로를 통해 의료원 운영주체인 한양대 재단이사회가 ‘차수련 복귀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잠정합의안이 막판에 뒤집어진 이유라고 생각한다.”

-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현장에 복귀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의료원측이 2010년 잠정합의안을 뒤집으면서 선택할 길이 많지 않았다. 의료원을 그만두거나 계속 버티면서 현장복귀를 요구하거나. 98년 별도합의서를 갱신하려면 의료원 노사와 나, 이렇게 삼자가 재합의를 해야 한다. 2010년 잠정합의가 뒤집어진 이후 노조와도 소원해졌다. 노조를 통한 복직투쟁이 어려워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퇴직하는 것뿐이었다. 개인적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현장복귀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하거나 고발할 생각도 했지만 이내 접었다. 노조를 탄압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최근 노동부가 노동위원회에 시정명령을 요청하고 한 언론이 98년 별도합의문을 공개했다. 내가 마치 나쁜 합의문에 서명한 것처럼 보도해 개인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 속사정을 알리고 해명하기 위해 <매일노동뉴스>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98년 합의는 노조를 지키고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나의 개인 거취를 맞바꾼 어쩔 수 없는 합의였다. 그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고 건강도 회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십수 년간 현장복귀를 막은 족쇄였다. 이젠 끊어 내겠다. 노조와 의료원측이 노동위 결정이 나오면 다시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결과를 지켜보겠다. 의료원측이 나의 복귀를 끝내 거부한다면 민·형사상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할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보건의료노조 한양대의료원지부에는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글=김봉석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김봉석  seok@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봉석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