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지난해 10월26일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팀에서 신입 조연출로 일했던 고 이한빛(28) PD가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이 그러하듯 고 이한빛 PD의 죽음 또한 유가족과 대책위원회가 파악할 수 있는 사실관계는 너무도 제한적이었다. CJ E&M 본사는 <혼술남녀> 제작팀의 노동강도와 인권모독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 CJ E&M쪽은 법률대리인인 민변의 정병욱 변호사와 주고받은 공문을 통해 "타 프로그램 대비 근무강도가 특별히 높은 편이 아니었다" 주장했다.

유가족과 대책위(준)는 자체조사에 나섰다. 고인의 통신기록과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그리고 <혼술남녀> 제작관계자의 증언 등을 모아 진실의 조각을 맞춰 나갔다. 이 과정에서 고 이한빛 PD의 사망에 CJ E&M 본사 책임이 있다는 사실과 근거를 밝혀냈고 얼마 전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세상에 알렸다.

고 이한빛 PD가 노동현장에서 느꼈을 고뇌와 생전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나는 그가 ‘휴머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비정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첫 직장인 CJ E&M에서 받은 여러 달치의 급여를 모두 4·16연대, KTX 해고승무원 투쟁 등에 기부했다.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감각했고, 잘못된 구조에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PD라는 직업을 통해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했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성적으로 임했다.

청춘의 애환을 다룬 <혼술남녀> 제작현장이 역설적으로 가장 비인간적으로 작동되는 현실. 시청률로 표현되는 돈의 논리 앞에서 종사자들의 애정과 고뇌가 헌신짝처럼 다뤄지는 현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그리고 스스로가 가장 경멸스럽게 여기던 삶. 고 이한빛 PD에게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이었으리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CJ E&M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다. 수많은 모순들이 얽혀 있어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당사자가 어떤 행동을 하려면, 그는 이 바닥을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고 이한빛 PD보다 오랜 기간 동종업계에 종사하며 숱한 시련을 견뎌 왔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존중한다. 덧붙여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업계 바닥의 타일을 이어 붙이면 '노동착취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얼굴을 내밀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일 리 없다. 업계 관행도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이를 바꿀 수 있는 힘도 사람에게 있다. 고 이한빛 PD가 남긴 메시지에 공감하고 성찰하고 반응하는 것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살아생전 지독한 외로움과 싸웠을 고 이한빛 PD의 명복을 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