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중앙일보는 이번 대선을 ‘3무’ 선거라 했다. 현직 대통령도 없고, 영호남 대결도 없고, 호남 출신 후보가 한 명도 없는 초유의 ‘3무 대선’이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흉내 내는 대통령이 있고, 호남 적자를 내세우는 두 후보가 영호남 지역감정에 여전히 목을 매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17일 전북 전주를 찾아가 ‘호남 차별론’을 주장하면서 “문재인이 DJ를 골로 보냈다”고 기염을 토했다.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이다. 그는 “문재인은 우리 전북 인사들을 차별했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돼야 전북 출신 인사가 차별을 안 받는다. 안철수가 돼야 전북 예산을 끌어와서 새만금 등 전북을 발전시킨다”고 외쳤다.(한겨레 4월18일자 5면)

중앙일보가 진단한 3무는 여전히 펄떡이며 살아 있다. 이젠 국민의 손으로 3무를 끝내야 할 때다.

정작 이번 대선에서 없는 건 ‘문화 공약’이다. 5개 정당 후보들의 3대 공약 어디에도 ‘문화’라는 글자를 찾을 수 없다. 10대 공약쯤 가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후보가 9번째 공약으로 ‘문화국가’란 말을 썼지만, 그마저도 환경·에너지 공약의 하위 개념일 뿐이다. 심상정 후보도 9번째 공약에 ‘문화예술인 지원’이라고 흐릿하게 한 줄 써 놨지만, 이 역시 탈핵과 언론독립 공약과 병렬적 의미로 가져왔다.

과거 대선후보들은 선거 때만 되면 연예인들 불러내 줄 세우고, 기자회견 열고, 한국예총을 기웃거렸는데 이번엔 이런 이벤트도 깡그리 사라졌다. 이 모든 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화융성’ 후유증이다. 박근혜는, 사실 최순실인지도 모르겠지만, 문화를 신성장 동력으로 적극 지원해 문화와 경제를 접목시키는 색다른 정치를 구사했다. 그 결과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국민에게 깊게 각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현직 장관이 줄줄이 감옥 가고, 고위직들도 몇몇 구속돼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박근혜·최순실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다 해고된 전직 장관은 재판정에 가서도 입바른 소리를 했다. 천하의 공안검사였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그 파도에 휩쓸려 옥살이 중이다.

느닷없이 치러지는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는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이란 프레임이다. 그러나 두 단어는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다. 적폐청산 없는 국민통합은 사기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 이슈는 경제(일자리)다. 그런데 이를 놓고 보수언론은 좀 독특한 ‘경제’를 얘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살리기는 일자리와 크게 상관없고, 전체 국민경제와도 크게 상관없다. 오로지 재벌대기업의 돈벌이만 우선이다.

동아일보 18일자 '먹고살 거리 팽개치는 나라'라는 제목의 경제부 차장 칼럼을 보면 완공을 앞둔 우리 원자력발전소 수출 1호인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4기를 지으면서 발생한 건설 매출만 21조원으로 쏘나타 228만대 수출과 맞먹는 규모란다.

칼럼은 우리 원전 수출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28명이 참여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돌발변수가 생겼다고 했다. 칼럼은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촌각을 다투는데도 이념을 이유로 눈앞에 있는 먹거리를 내던져 국부와 일자리 늘릴 기회를 팽개치는 일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안 롤링은 자기 집 앞 작은 단골 카페에 앉아 노트북만 똑딱거려서 1조원을 벌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영국 경제에 기여한 돈은 연 5조5천억원이다. 해리포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자산이다.

그렇게 돈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 언론이 왜 이런 것에는 눈길을 안 주는지 모르겠다. 드라마가 대박 칠 때마다 세트장을 관광상품으로 만든답시고 건설자본 배만 불린 채 흉물로 방치하는 게 경제와 일자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원전은 건설자본의 배만 불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후세에 혹독한 비용을 청구한다.

어설프게 돈벌이와 접목시키지 말고, 지적 정신이 충만한 문화융성만이 자원 없는 우리가 살길이다. 인공지능이 바둑을 잘 둬도, 고도의 철학을 담은 문학작품을 쓸 순 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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