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침몰한 지 3년 만에 세월호가 모로 누운 채 인양됐습니다. 부서지고 일그러지고 찢기고 금이 가고 녹슬어 있었습니다. 깃발도 고동소리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도 사라진 한 덩이 고철이었습니다. 벌써 따개비와 해조류 등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습니다. 처참했습니다. 눈물보다 먼저 숨이 막혔습니다.

막강한 권력은 인양을 거부했지만, 가냘픈 촛불이 모이고 모여 작은 손 잡고 또 잡아 세월호를 건져 냈습니다.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선실에 갇혀 학살당한 304명의 원혼이 세월호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배 어딘가에 갇혀 구천을 헤매고 있는 아홉 분 미수습자의 절규가 깊은 펄 속에서 배를 뽑아냈습니다. 가족과 유족과 함께 울며 손잡았던 착한 이웃들이 결국은 세월호를 건졌습니다. 최고의 방해세력 박근혜가 감옥에 가면서 저주는 풀리고, 비로소 세월호는 암흑의 바다 속에서 광명의 하늘로 솟아올라 왔습니다.

헬조선,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의 한국, 우리나라였습니다. 노동기본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권마저 저당 잡혀야 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나라, 역사마저 빼앗기고 일제 종군 성노예들이 다시 한 번 유린당하는 국정교과서의 나라,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거기 국토의 끝자락 목포신항에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처참한 몰골로 모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적폐의 암흑 깊은 바다 밑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포기했지만, 절망과 포기를 거부한 인간 본연의 신성하고 거룩한 힘에 이끌려 비로소 한 뼘 희망의 씨알 위에 거치돼 있었습니다. 가장 거창한 절망의 고철 덩어리가 가장 작은 희망의 씨알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거창하더라도 절망은 죽음이기에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더 자라거나 나아갈 수 없는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다릅니다. 아스팔트 깨진 틈에서 민들레가 자라 노란 꽃이 피고 꽃대를 세워 홀씨를 날려 보내듯, 모로 누운 거대한 세월호 구석구석에서는 희망의 씨알들이 싹 터야 합니다. 싹을 틔워야 합니다. 그래서 비로소 민들레가 홀씨를 날려 보내 듯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 적절한 보상, 재발 방지와 안전사회 건설의 홀씨를 날려 보내야 합니다. 그것은 세월호를 건져 올린 촛불들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모로 누운 거대한 절망의 고철덩이가 희망의 홀씨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코앞에 닥친 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 촛불시민들이 지난겨울 내내 촛불을 든 것은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그 당사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 새 나라 건설의 기회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성공했습니다. 지난가을 촛불을 처음 들 때 우리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우리 자신들의 힘을 의심했습니다. 국회의 여야 의석수를 알았기에, 감히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론하기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습니다.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은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러나 스스로 진화한 촛불은 절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적폐세력인 새누리당까지도 제압해서 압도적으로 탄핵소추 의결을 끌어냈습니다. 촛불시민, 즉 국민의 승리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제 국민은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 새 질서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태극기에 성조기까지 들고 연일 아스팔트를 누비며 악을 쓰고 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옛 새누리당 패거리들이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로 국민을 겁박하고 회유하지만, 이 세 당이 다 합쳐도 지지율 10% 안팎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는 기정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과 진보정치를 중심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야말로 다른 걱정 없이 소신껏 투표할 기회가 왔습니다. 이때야말로 우리는 이번의 정권교체를 넘어 그 다음까지 생각하며 투표를 해야 합니다. 돈이 아니라 인간이 존중받고 노동이 당당한 복지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주저 없이 진보정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 때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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