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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음 세대를 위한 대선
한지원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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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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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아빠 세대가 너무 혼자 다 누린 거 아니야? 우리를 위해 뭔가 좀 남겨놨어야지!” 나는 요즘 다섯 살 내 아들이 30년 후에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대한민국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나라였다. 연평균 경제성장률 7%로, 10년에 두 배씩 경제가 커졌다.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8배 더 잘산다.

하지만 내 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제성장이 50%도 되지 않는 시대에 살 것이다. 경제기관에서 예상하는 우리나라의 앞으로 잠재경제성장률은 1% 내외다. 잠재성장률을 기본적으로 낙관적으로 보고 추산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는 이보다 더 낮을 것이다. 저성장에 취약한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남미와 비슷하게 주기적으로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

장기 경제사 연구에 따르면, 지난 인류 생산력의 90%는 20세기 100년간 이룬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 세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0.2%에 불과했다. 그런데 장기 경제사 연구가들은 앞으로의 시대는 20세기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은 인류는 2천년 역사에서 20세기 전후 단 한 번의 큰 변화(one big wave)를 겪었을 뿐이라며, 이 효과가 사라진 21세기에는 다시 평균 수준의 경제성장률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수 거시경제학자들도 기술적·제도적 한계로 인해 세계 경제가 꽤 오랜 기간 저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다. 국내외 경제기관이 예측하는 우리나라의 장기 성장률은 세계 경제전망보다 더 비관적이다. 따라잡기 성장 후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 같은 기술낙관론이 회자되지만, 사실 기업과 부자들의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하버드대 아시아센터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2년 공동 연구해 발간한 <기적에서 성숙으로>는 우리나라가 고소득 국가로 발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진단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민족경제를 포기하는 급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를 대량 유입하거나, 아니면 자본이 우리나라를 떠나 동북아 생산·공급망을 꾸려 그곳의 노동력을 마음껏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혁신이 멈춘 민족경제를 버려야 자본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세계 시민이 되고, 한반도는 동북아 근로자민족공동체로 만들자는 이야기로도 해석 가능하다. 세계 시민이 된 자본가들의 노동력 저수지로서 민족공동체, 이것이 내 아들 세대 노동자의 경제공동체일 수도 있다.

이런 디스토피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성장과 진보를 독점한 민족사의 파렴치한 세대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우리 세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따라잡기 성장 50년을 대체할 만한 성장전략을 당장 만들기 어렵고, 또 세계 경제는 우리가 세계 자본주의의 컨센서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막강한 세계 자본에 비해 현재의 노동자와 서민들은 조직되지 않았고, 집단적 힘도 약하다. 또 무엇보다 현재의 우리는 소련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술혁신의 곤란함, 계속되는 수요 부족, 빈부격차 확대 등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너머 대안세계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음 세대가 시대를 바꿀 수 있도록 발판이 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꾸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권력에 좀 더 민주적으로 접근하고 변혁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새로운 대안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지식, 나는 이런 것들이 도약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선 시기라 4차 산업혁명 준비, 재벌개혁, 소득재분배 등 수많은 경제개혁 과제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2012년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고 해서 창조경제·초이노믹스·서비스산업 육성 등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정책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2017년 야권 후보들의 공약을 봐도 ‘선한 의지’를 제외하면 박근혜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재협상이 IMF 플러스로 바뀌고, 민주 개혁이 신자유주의 좌파로 바뀐 민주당 정부 10년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야권 후보들의 선한 의지를 믿지만, 현실의 경제 속 그들의 한계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한 표를 투자하자. 당선은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세대가 미래의 도전을 위해 역량을 축적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20년까지 노조 조직률 20%를 달성하겠다는 노조할 권리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보수 중도 경쟁을 하는 기득권 정당과 달리 진보좌파로서 의회와 행정부 권력에 접근하는 진보정당이란 점에서, 자본주의 외의 다른 대안을 고민하는 세력이 공존하는 정치집단이란 점에서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심상정 후보의 높은 득표율은 상대적으로 미래세대에게 더 나은 도약대를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정책개혁 과제들을 나열하고 5년 후 다시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보다, 우리 다음 세대 노동자들이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발판이 돼 주는 것이 훨씬 값어치 있는 개혁이다. 나는 이것이 현 정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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