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요즘 <매일노동뉴스>에 크게 보도된 기사가 있다. 바로 SK플래닛 사건이다. 지난달 20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저성과를 이유로 한 회사의 조합원에 대한 해고를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지난 정부에서 크게 논란이 됐던 이른바 저성과자 해고 사건으로, 그것도 법원이 아닌 노동위원회에서 한 판정이라는 큰 의의가 있다.

사건 보도에 그치지 않고 <매일노동뉴스>는 역량향상프로그램(PIP)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피교육생에 대한 인권침해까지 추적했다. 회사는 교육대상자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했다. “10~20분씩 통화하는 횟수가 3회” 등 잠시 휴식을 하거나 급한 전화를 받은 사실까지 일일이 보고했다고 한다. 이런 비인간적인 인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급기야 지난 13일 노동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교육 현장을 방문해 인간으로서 기본적 존엄과 가치가 지켜질 수 있도록 살펴봐 달라”는 진정을 제출했다. 희망컨대 노동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도 반드시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인권위의 확인이 나오리라.

직접 감시했다는 욕은 먹기 싫었던 것일까. 알바생에게 교육생 일을 맡겼다. “R매니지먼트라는 회사가 한 일이다. 용역회사가 한 세부적인 행위까지 회사가 책임지라는 법도 없지 않느냐”는 변명을 준비했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회사는 실제로 “그런 형태의 보고서를 요구한 게 아닌데,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 직원이 잘 모르고 실수했던 것 같다”고 해명한다.

비루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법률적으로는 무지를 드러냈다. 설사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에 대한 원인 제공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 일반 시민법이다. 하물며 노동관계에서 원도급자의 책임은 더 가중해야 한다는 게 노동법의 원리가 아닌가. 늦었지만 경기지노위의 결단과 치밀한 이론 구성에 경의를 표한다. 때문에 회사가 불복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다만 이유에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왜냐하면 지노위 판정은 지난 정부가 주장해 온 이른바 ‘저성과자 해고’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판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유에서 지노위는 “저성과자 해고는 통상해고에 해당하므로 사용자의 해고회피 노력과 신의칙상 배려의무가 요구된다”고 했다. 자칫 “저성과자 해고는 이러이러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온다.

돌아보면 지난 정부가 탄핵으로 마무리된 데에는 노동개악이 주요한 원인이 됐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와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다. 법에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행정해석으로 억지 근거를 마련하려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법에 근거가 있었다면 굳이 수백 쪽에 이르는 해석서를 만들 이유가 없지 않는가.

다시 한 번 근로기준법을 보라. 근기법 23조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징벌(懲罰, 부당해고 등)”함에 있어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고 있다. 징벌의 순화된 표현은 흔히 쓰는 징계다. 법문만으로도 근기법은 징계를 전제로 한 해고를 원칙적으로 할 뿐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는 예정하지 않았다. ‘저성과자를 징벌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는 없지 않는가.

때문에 저성과자 해고 내지 통상해고는 징계해고나 정리해고와는 전혀 그 범주를 달리하는 새롭게 정립된 제도가 아니었다. 그동안 법원에서 저성과가 문제된 사건은 극소수일 뿐이고, 그마저도 징계의 “정당한 이유”를 밝히는 데 있어 부수적인 고려 요소로 판단됐을 뿐이다.

지난 4년을 버텨 온 현장 노동자들은 저성과자 해고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한다. 사용자 맘대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사회적 생명이 정리된다는데 그 어느 노동자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상식 수준의 절박한 요구다. 19대 대통령은 할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손쉽고 신속히 폐기할 목록에는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만들어 낸 각종 지침과 해석이 올라야 한다. 1순위는 2대 지침이다. 이것이 곧 헌법수호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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