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고 이한빛 PD 사망 관련 입장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은영 기자

“한빛이의 실종을 뒤늦게 알고 불안 속에 선임 PD를 만났습니다. 선임 PD는 한 시간 넘게 한빛이 불성실했고 비정규직을 무시해 갈등을 초래했다고 비난했습니다. 27년간 한빛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가 18일 언론 앞에 섰다. 이한빛 PD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촬영을 마치고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전하며 울먹였다. 이 PD는 지난해 10월21일 마지막 촬영에 불참했다. 이 PD와 6개월간 일한 <혼술남녀> 연출팀은 4일이 지난 같은달 25일 그가 실종된 것을 알아채고도 수색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선임 PD는 이 PD의 어머니 김혜영씨와 만난 자리에서 "이 PD가 근태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혜영씨는 “선임 PD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빛이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며 “한빛이가 남긴 글을 보고야 선임 PD의 의도를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선임 PD가 철저하게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했다. 이 PD의 주검은 김씨가 선임 PD를 만난 날 발견됐다.

◇회사 “유가족, 조사 참여 불가”=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 PD 사망 관련 입장을 발표했다. 김혜영씨는 이 자리에서 아들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회사측에 공개사과를 받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지난해 1월 CJ E&M PD로 입사해 같은해 4월 tvN <혼술남녀>팀에 배치됐다.

이 PD가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회사는 공식적인 사과나 진상규명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이 PD가 사망한 이후 회사와 세 차례에 걸쳐 면담을 진행했다. 대책위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관한 조사와 조사 방법을 논의하고자 했으나 회사는 내부 자체 조사를 고수했다. 대책위가 근무강도와 출퇴근 시간 확인을 위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는 이 PD 죽음의 원인을 근무태만으로 규정했다.

◇유서에 “20시간 넘는 노동” 언급=대책위는 이 PD 사망원인으로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환경과 군대식 조직문화”를 꼽았다. 이 PD는 신입 조연출로서 의상·소품·식사 같은 촬영 준비부터 촬영장 정리·정산·편집 업무를 수행했다. 지난해 8월 갑작스레 외주업체와 스태프가 교체되며 계약해지와 계약금 반환 업무도 해야 했다.

대책위는 “이 PD가 주고받은 업무 메신저와 통화내역을 볼 때 지난해 8월27일부터 실종된 10월20일까지 그가 쉰 날은 단 이틀이며, 9월20일부터 10일간 분석한 수면시간은 45시간20분으로 하루 평균 4.5시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PD는 지난해 10월 선임 PD에게 드라마 제작 과정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선임의 비난이었다. 대책위는 “이 PD가 노동착취 피해자이자 스태프를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로서 고민과 어려움이 깊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유서에서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 (내야 한다)”라며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하는 것은)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다”고 밝혔다.

CJ E&M측은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할 때 근무강도가 특별히 높은 편이 아니었다”며 “자체 조사 결과 이 PD의 근태불량으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이 PD 사망사건과 관련해 회사의 책임 인정과 공식사과, 그리고 관련 책임자 징계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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