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플래닛노조 간부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PIP교육을 받는 서울 서초구 L비즈니스센터 강의실 풍경. 교육생 바로 뒤에 교육대행업체에서 파견한 직원이 앉아 있다. SK플래닛노조

SK플래닛 퇴직거부자들의 역량향상프로그램(PIP) 교육을 담당한 교육대행업체가 교육대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회사에 일일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대상자들의 말과 행동, 교육자들 간 대화 내용까지 날짜별 시간별로 세세하게 적시해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16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일일현황 보고서<사진>에는 2014년 6월12일부터 11월26일까지 당시 교육대행업체였던 R매니지먼트가 교육대상자 6~9명의 동향을 개인별·일별·시간별로 보고한 내용이 담겨 있다. R매니지먼트는 SK플래닛이 퇴직거부자 20명을 PIP교육에 배치한 2014년 4월부터 2016년 3월까지 교육을 맡았다. 보고서가 작성된 기간은 2014년 4월1일부터 5월 말까지 진행한 특별교육을 수료하지 못한 직원들을 추가로 교육한 기간으로 확인됐다.

당시 추가 교육자였던 주성환 SK플래닛노조 위원장은 "교육 대상자들이 앉은 자리 앞에 파티션을 치고 업체 계약직 직원 1명이 앉아 있었다"며 "이 직원이 일일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생 대화 엿듣고, 분 단위 감시=보고서는 교육대상자들의 △근태(출퇴근) △리포트 제출 여부 및 특이사항 △특이사항 △비고 등 4개 항목으로 작성됐다. 특이사항에는 개인별로 몇 시에 누구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몇 시에 돌아왔는지, 누가 어떤 불만을 토로했는지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다. 업체 직원은 교육생 간 대화는 물론 자신과 교육생이 나눈 대화 내용까지 일일보고서에 적었다. 비고란에는 당일 교육생들에게 있었던 일을 종합해 기록했다.

예컨대 같은해 6월12일자 보고에서 교육대상자 김아무개씨와 관련해 근태 항목에 '9시 출근, 6시 퇴근', 특이사항에 "점심시간 후 1시30분부터 2시까지 자리 비움, 개인적인 전화통화가 잦음"이라고 표시했다. 이날 비고란에는 "문○○·서○○·윤○○·주○○님 외 세 분은 전체적으로 10~20분 정도씩 자리를 자주 비우심"이라며 "5시에 주성환(현 노조위원장)·주○○·서○○님 3명이서 40분 넘게 같이 탕비실에서 휴식"이라고 적혀 있다.

▲ PIP교육 대행업체에서 작성한 일일현황 보고서. SK플래닛노조

개인별 통화시간과 외출시간도 분 단위로 보고됐다. "10분~20분씩 통화하는 횟수가 3회"라거나 "2시40분~3시5분(25분) 자리 비움" 또는 "2시25분~2시50분(25분) 통화, 5시10분~5시45분(35분) 1사옥에 재무처리 신청하실 게 있다 해서 보고 후 외출" 같은 방식이다.

교육대상자끼리 나눈 대화를 엿듣고 내용을 보고하는 일도 잦았다. "지금 받고 있는 교육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며 우스갯소리로 대화 나누심"(7월2일), "회사에서 제공된 상품권 각자 수령하면서 회사 사정 얘기도 하고, 희망퇴직·성과금에 대한 단어가 나왔음"(7월10일), "임금피크제·희망퇴직·구조조정에 관한 얘기를 나눔"(7월23일), "주○○님과 주성환님이 어떤 서류를 보면서 '위원회, 고충 제기'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한참 얘기함"(10월20일) 같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교육대상자들을 밀착감시했다는 증거다.

심지어 "지금 교육받는 동안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해 눈이 안 좋아졌는데 산재 처리할 수 있는 거냐며 우스갯소리 함"(7월3일)이라거나 "나중에 2~3년쯤 뒤에는 창업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다 함"(7월4일), "6월 역량향상교육 평가에 불만을 가진 이후로 교육과정이나 교육진행 사항에 불만을 토로함"(8월8일)처럼 교육대상자들이 업체 직원에게 말한 교육 관련 불만사항과 농담·하소연까지 빠짐없이 보고됐다.

사찰 사실은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이 업체에 이메일로 보내려던 '11월26일자 일일현황'을 교육생들에게 잘못 보내면서 드러났다. 직원이 해당 보고서를 업체에 보내면, 업체가 다시 SK플래닛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파일에 매일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형식이라 교육생들은 대행업체가 그동안 작성한 보고서를 통째로 볼 수 있었다.

주성환 노조위원장은 "당시 교육생들이 일일현황 보고를 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며 "그 직원이랑 밥도 먹고 얘기도 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보고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노조 설립 후 SK그룹 윤리경영실을 찾아가 "교육대상자에 대한 감시 기록은 인권침해"라며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아라" 혹은 "문제가 있으면 소송을 걸어서 해결하라"는 얘기뿐이었다고 주 위원장은 전했다.

◇알바생에 책임 떠넘긴 R매니지먼트=SK플래닛 PIP교육을 담당했던 R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업무지침을 내릴 때 그런 형태의 보고서를 요구한 게 아니었는데,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 직원이 잘 모르고 실수를 했던 것 같다"며 "원래 근태만 체크하라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고서 내용을 점검 안 해서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며 "(보고서가 교육자들에게 유출된) 이후에는 그런 보고를 못하게 했다"고 해명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업체 지시 없이 자의적 판단으로 교육대상자들의 동태를 매일 보고했다는 해명은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오히려 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보고서를 받아 보는 SK플래닛쪽이 업체에 관련 양식을 요구하고 업체가 이를 수행했을 공산이 크다.

교육 책임자가 일일보고서 내용을 점검하지도 않고, 보고서가 유출된 다음에야 내용을 확인했다는 해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주성환 위원장은 "SK플래닛과 교육업체가 맺은 용역계약서에 관련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플래닛이 대행업체를 R매니지먼트에서 H컨설팅으로 바꾼 뒤에도 교육생 감시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진 거라곤 바뀐 교육장소, 그리고 교육생 앞에 있던 대행업체 직원이 뒤로 옮겨 간 것뿐이다. 노조가 공개한 서울 서초동 L비즈니스센터 교육장 사진을 보면 교육생들과 뒤에 앉아 사무지원을 하는 업체 직원 간 거리가 1~2미터도 안 된다.

노조는 이달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PIP 프로그램이 회사 밖 별도 공간에 분산돼 진행되고 있으며 때로는 교육생 한 명에 감시자 1명(현재는 교육생 3명에 감시자 1명)이 바로 뒤에서 교육 종료시까지 관찰해 보고하고 있다"며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줘 퇴사를 강압하고 인격이 파괴되고 가정이 붕괴되는 인권유린 현장을 방문해 달라"고 진정했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CCTV에 의한 감시도 인권침해·노동기본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감시·감독하는 것은 인권침해·노동기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김경수 공인노무사(연합노련)는 "직원들의 역량향상이 진짜 목표였다면 교육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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