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프랑스 대선 TV토론에서 반자본주의신당 필리프 푸투 후보가 스타로 떠올랐다. 목이 늘어진 낡은 티셔츠를 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기른 그의 모습은 말끔한 정장 차림의 다른 후보들과 대조를 이뤘다.

우리 언론도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이 지난 7일자 국제면에 주요 뉴스로 푸투 후보를 다뤘다. 주로 그의 차림새와 발언의 강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푸투의 TV토론 등장은 우리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대선에서 1.15%를 얻었고, 이번에도 지지율이 0.5%밖에 안 되는 푸투가 주요 후보들과 함께 당당하게 TV토론장에 섰다. 우리 KBS는 원내정당인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를 TV토론에서 배제했다가 정의당의 항의로 겨우 참석시켰다.

이번 프랑스 대선엔 중도좌파 외에 왼쪽으로 공산당·좌파당·반자본주의신당까지 참여했다. 오른쪽엔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도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우리처럼 운동장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선거판이 또 있을까. 정의당과 원외 민중연합당 정도가 악전고투하는 우리 선거와 많이 다르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 공산당 후보로 나선 나탈리 아르트 후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아르트 후보는 현직 교사다. 우리는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때문에 당적도 가질 수 없는데 프랑스엔 버젓이 대선후보로 출마까지 한다. 공무원의 중립의무는 우리가 아직도 낡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다. 고위직 공무원은 다들 특정 정당에 줄 서고 노골적으로 선거판에 끼어드는데 하위직 공무원만 발목이 잡힌다. 프랑스는 종종 교사 파업도 일어나는 나라다. 우리는 단체행동권을 제약한 노동 2권만 주고 있다.

우편배달부의 아들인 푸투 후보는 포드자동차 공장 노동자다. 푸투는 5주간 휴가를 내고 이번 선거에 뛰어들었다. 우리 제조업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참 부럽다. 우리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평일 하루 9시간씩 일하면서도 주말에 특근까지 한다. 이렇게 해서 연봉 1억원을 받으면 뭐하나. 프랑스가 이상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이상하다.

프랑스 것이라면 뭐든 좋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푸투가 토론장에서 중도신당 마크롱 후보에게 날린 직격탄은 프랑스의 민낯을 보여 준다.

프랑스는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 그중에서도 폐쇄적 국립행정학교(ENA) 졸업생들이 다스리는 나라다. 극소수 수재들이 국립행정학교를 나와 정치·사회·문화·재계를 쥐고 흔드는 나라가 프랑스다.

푸투가 “당신이 노동을 알아?”라고 직격탄을 날린 중도신당의 마크롱 후보가 바로 이 국립행정학교 출신이다. 2006년 프랑스를 뒤흔든 정치 스캔들 때도 엘리트 교육기관 국립행정학교가 주범으로 떠올랐다. 그랑제콜 출신은 프랑스 사회 좌우에 포진해 프랑스를 지배해 왔다. 그토록 존경받는 시몬 베유조차 그랑제콜의 하나인 파리고등사범학교 출신이다.

소수의 권력독점은 우리도 프랑스 못지않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사람 중엔 서울대 출신이 단연 으뜸이었으니. 1천만명이 훌쩍 넘는 국민이 만들어 낸 장미대선에 출마한 원내정당 다섯 명의 후보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3명이고, 나머지 두 명도 사법고시 출신이다.

김종인·정운찬·홍석현 같은 이들이 헌법 개정을 말한다. 오로지 내각제로 권력구조 개편만 염두에 둔 헌법 개정이다. 프랑스는 1999년 헌법을 개정해 선출직에 남녀 동수 조항을 명시했다. 99년 이전 프랑스와 우리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낮은 대표적인 나라였다. 99년 헌법 개정으로 지금 프랑스의 여성 국회의원은 20%를 넘어섰다. 우리는 여전히 10%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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