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박근혜가 당선된 직후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던 최강서님은 박근혜 당선 이후 5년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비정규직 해고자로 버텨 왔던 윤주형님은 모두가 차갑다 했다.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이들의 절망과 고통을 보며, 우리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절망을 주며 출범한 박근혜 정권은 임기 마지막 촛불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외쳤기에 결국 탄핵당했다. 이것은 불안정한 노동, 미래 없는 삶, 경쟁 속에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의 저항이었다. 박근혜가 물러나고 구속까지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가.

불행하게도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도 우리는 또다시 많은 죽음을 마주하게 됐다. 촛불이 타오르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야간노동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기에 촛불집회에도 나올 수 없었던 이들이 속절없이 죽어 갔다. 지난해 12월4일 경산의 CU편의점에서 야간근무를 하던 알바노동자가 살해됐다. 20원짜리 비닐봉투로 붙은 시비 끝에 벌어진 죽음이었다. 올해 1월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한 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계속되는 실적압박과 모욕을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TV 드라마를 제작하던 한 조연출이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에서 고통받다가 목숨을 끊었다. 자신도 힘들었지만 조연출이라 스태프들에게 그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각 회사는 이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유가족과 충분히 협의하거나 온전하게 사과하지 않았다. 대응은 모두 똑같았다. 이분들의 친구와 가족들은 이 억울한 죽음을 그냥 넘길 수 없었기에 사회에 호소했고, 많은 시민들이 온전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해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 죽음들은 개별 사건이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위험한 작업에 홀로 내몰려 산업재해로 죽거나, 회사의 압박과 괴롭히기로 인해 죽음을 택할 것이다. 매년 평균 산재로 죽어 가는 사람이 2천400여명이나 되고, 일터 괴롭힘으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은 그 수조차 확인할 수 없다. 박근혜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많은 이들은 죽음의 일터에서 고통받는다. 이 죽음은 그 절망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보내는 경고다.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적어도 일하는 노동자 절반이 권리를 잃었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고, 살기 위해 장시간 일해야 한다. 인격모독과 차별을 견뎌야 한다. 이것은 결코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이들이 '죽어 간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안전은 비용으로 계산되고 규제로 간주된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누군가가 죽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음에 내몰린다. 노동자 권리가 사라지면 가장 약한 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진다. 이 죽음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을 바꿔야 미래가 열린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박근혜가 사라지고 대통령선거가 시작되면서, 다시 누군가를 선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미래를 의탁하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후보가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박근혜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된 이번 선거에서 유력 대통령후보들은 생명안전 공약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 위험의 외주화는 한계 상황에 다다를 만큼 심각한데, 전체 공약에서 노동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기만 하다. 이 사회를 어떻게 총체적으로 바꿀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여전히 기업과 수구세력의 눈치를 살핀다.

누군가에게 우리 미래를 의탁하는 대신 노동자와 시민 스스로가 삶의 주체가 돼야 한다. 친구와 가족의 죽음을 마주한 이들이 체념하지 않았고, 이에 많은 시민들이 연대했듯이 더 많이 뭉쳐 힘을 키워야 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아프다는 말도 못한 채 묵묵히 절망노동을 견딘다.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오늘도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 이들도 있다.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이윤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고 노동의 권리가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많이 뭉쳐 노동권을 되찾기 위한 싸움에 나서자. 그래서 헬조선, 죽음의 땅에 희망을 만들어 내자.

그것을 위해 '만원행동'이 시작됐다.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를 바라는 이들이 목소리를 함께 내는 공간이다. 1천6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자신이 주인임을 밝혔듯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만원행동'에서 희망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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