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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방식, 세월호와 산재 노동자들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남쪽부터 터져 올라온 벚꽃이 흐드러진다. 봄이다. 아마도 요란한 봄이 될 것이다. 본디의 주권자들은 온 겨울을 촛불로 밝혀 모질고 무능한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그러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꽃잎처럼 스러져 내린 생명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눈앞에서 생생히 벌어진 참사는 온 국민의 트라우마가 됐다.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매듭, 노란 리본으로 아프게 새겼다.

단 하나의 생명조차 중하지 않은 게 없고 숫자의 크기로 헤아릴 바는 아니지만 일터에서도 매년 예닐곱 척의 세월호가 침몰한 정도의 생명들이 스러져 간다. 역시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2016년 공식 통계로만 9만656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병들었고, 1천777명이 사망했다. 아이들을 앗아 간 세월호는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기어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과 생명을 앗아 가는 산재의 그림자는 리바이어던처럼 여전히 심연에서 맴돌고 있다.

죽음이나 죽음에 이르게 할 만한 사고를 기억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기억에 대한 고통스러운 회상과 재경험은 마음의 병이 되기도 하지만 기억함과 되새김이 없다면 사건들은 반복될 것이다. 세월호는 개인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넘어 사회적으로 새겨져 기어이 배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일터에서 폭발사고로, 떨어지고, 끼이고, 깔려서, 백혈병으로 그렇게 쓰러지고 죽어 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은 어떠한가. 그들을 죽어 가게 만든 시스템 안에 그들에 대한 기억을 담을 공간은 없다.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은커녕 몸서리쳐지는 죽음 자체에 대한 기억조차 꼭대기 원인 제공자들이 아니라 옆에서 일하고 가까스로 죽음을 벗어난 동료 노동자들과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목도한 노동자들에게서만 재경험되고 각성되고 현장을 회피하게 둬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남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공의 논의 속에서 같이 재경험하고 각성해 일터가 죽음의 전장(戰場)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잊히는 일이 가장 두려운 일임을 아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삼성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반올림 노숙농성장을 찾고 공감했다.

저녁이 있는 삶도 좋고, 완전히 새로운 나라도 좋고,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도 좋다. 이제 요란한 정치적 봄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는 자들은 기억하고 답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에서 이름도 모를 화학물질 속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쓰러진 고 황유미씨를 기억한다면 유해물질에 대한 시민과 노동자들의 완전한 알 권리 보장을 말해야 한다. 실외기를 설치하다 추락해 사망한 두 아이의 아버지 가전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진남진씨를, 끼니 대신이었을 사발면을 가방에 담고 홀로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쓰러진 협력업체 19살 김군을, 스마트폰 공장에 인력파견돼 일한 지 며칠 만에 시력을 잃어버린 젊은 노동자들을 기억한다면 무차별적인 파견·하도급과 더불어 위험의 외주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안전조치 없는 위험한 작업에 대해 마땅히 거부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야 할지 답해야 한다. 고객 욕받이 부서에 배치돼 실적강요를 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콜센터 실습생 열아홉 살 홍수연양을 기억한다면 감정노동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노동자들 위한 어떤 대책이 있는지, 노동자로서 혹은 예비노동자로서의 건강권과 인권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답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죽음과 관련이 있는 원청 기업들의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답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있지 않느냐고 답할 것이라면, 법으로 지켜야 할 것과 지킬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고 지키도록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답하도록 해야 한다. 마치 법을 지키지 않는 방법을 알기 위해 법을 공부한 듯 보이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요란한 봄의 주인공으로 당신들이 하듯이 세상이 잘못됐으니 바꾸겠다고 소리칠 수 있는 권리보다 훨씬 원초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직장에서 일터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아프면 맘 놓고 쉬고 치료받을 권리!

이제 산재의 그림자와 원흉들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할 때다.

류현철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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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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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17-04-14 09:47:15

    위에 나온 사망 근로자는 모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왜 궂은일은 계약직이 다해야 하고 귀족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에 비하여 막대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가? 추락사하고 압사한 근로자들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나는 이 말을 해야겠다.
    정규직들 이제 갑질 좀 그만하고, 위에 글쓴이 같은 분이 하는 일을 도와서 산안법을 엄격히 지키도록 관리하여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볼 의향은 없는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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