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19대 대통령선거가 불과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곳곳에서 표를 달라는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들을 위하겠다는 그럴싸한 말잔치에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다. 진정 의지를 갖고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정권이 탄생하길 소망한다. 그런데 뭔가 공허하다. 이번 선거를 만든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합당한 근본 치료를 담은 공약이 없다.

출발은 헌법정신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개헌을 해야 한다”는-그럴 실력도 없지만-시중에서 벌어지는 논란에 개입하자는 게 아니다. 또한 대통령 중심제니 내각제니 하는 통치구조 문제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헌법 중 최상위 이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누구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알고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서도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며”라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오늘을 담고 있는 이른바 1987년 헌법정신의 요체는 ‘자유’와 ‘민주’였음이리라. 하늘에서 주어지는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은 ‘자유’를 회복하고, 군주나 독재자가 아닌 시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당시 우리에게는 최상의 과제였음을 잘 안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지난 30년간 이 땅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움튼 것만은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정이 바로 그 정점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다음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탄핵 후 우리가 맞을 사회는 전혀 달라야 하지 않겠나. 요컨대 자유만 있는 민주주의만으로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 나가기에 충분하지 않다. 사회 발전이나 진보라는 관점에서 이제는 평등의 가치를 자유 앞에 둬야 할 때라는 주장들이 큰 지지를 얻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역대 정부, 특히나 최근 10년의 실패는 공정한 분배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자유만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를 누릴 여력이 있는 자본과 권력이 전체 사회 부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쪽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그 반대편의 자유는 이름만 남았다. 자유의 악순환이다.

이 기간 평등은 형식적으로만 작동했다. 자유를 최대한 앞세운 결과다. 경쟁에서 뒤진 이도 함께할 수 있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평등정신은 실종됐고, 그 결과 헌법정신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진보도 제한적이었다는 비판이다.

그래서 평등자유민주주의여야 한다. 시작은 헌법 전문 개정이다. 평등과 자유의 정신이 동일하게 모든 헌법과 법률의 시작임을 천명해야 한다. “전문에 꼭 넣을 필요까지 있느냐. 현행 헌법 11조에도 평등 정신이 담겨 있다”라는 반론도 예상된다. 그러나 130개 조문은 각각 그 가치를 달리하고, 특히나 전문은 헌법정신의 출발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에 평등민주주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헌법 각 조문과 위임받은 법률에서 평등민주주의가 발현될 것이다. 특히 노동은 그 자체로 평등민주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과정이고 결과물이다. 국회 등에서도 이미 충분한 논의가 진행된 몇몇 제안을 소개한다.

우선 ‘근로’가 아닌 모든 노동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임을 확인하고 헌법과 법률에서 꼭 필요치 않은 이상 근로라는 표현은 폐기해야 한다. 여러 번 주장했지만, 노동부는 이름을 되찾고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던 노동기본권 수호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근로의 의무(헌법 32조2항)는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자리 제공은 인간다운 삶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을 위해 책임져야 할 국가의 최소한 책무일 뿐이다. 신속히 삭제하고 모든 노동자들의 일할 기본권 내지 국가의 의무로 대체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헌법 33조는 주체나 조건 등의 제한 없이 “모든 노동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개정해야 한다. 나머지 현행 조항들은 체계 모순이며 그 자체로 위헌이다. 제한하더라도 법률에 위임할 문제다.

“최저임금 제도, 비정규직 문제, 성과연봉제 등등을 뜯어고치겠습니다”는 공약도 위와 같은 헌법정신에서 제대로 실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공약을 남발할 게 아니라 “평등자유민주주의의 정신, 특히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헌법을 만들어 보겠다”는 공약이 먼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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