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와 몇 주간 남해안을 떠돌다 목포항에 누워 있는 세월호. 흉물스럽기도 하면서 처연하기 이를 데 없다. 옆구리를 하늘로 하고 있는 그 덩치 큰 금속 덩어리가 보일 때마다 국민 가슴은 먹먹해진다. 지금으로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다. "유가족이 되는 게 부러울 정도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울먹이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호소에 함께 한숨을 내쉬게 된다. 9명의 유해가 온전히 수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한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희생자 중에는 단원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 이번 참변을 맞아 유명을 달리한 두 젊은 여성이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아이들을 구조하려 노력을 기울이다 끝내 침몰해 가는 배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은 분명 책임감 있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보통의 선생님이었을 테고 끝까지 그 마음, 그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정규 교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국은 그들을 공무원연금법상 ‘순직’ 적용 대상자가 아니라 단순히 산재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사망자’로 규정하려 한다. 순직이 아니므로 국가유공자도 아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정규직 공무원이었다면 동일한 상황, 동일한 행위의 결과로 그들은 순직자이자 국가유공자로 인정됐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망연자실했던 우리는 이런 공식 규정을 경험하면서 한 번 더 절망하게 된다. 동일한 현장에서 참사를 당한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불평등과 차별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당연한 걸까. ‘의인’ 반열에 올라야 할 꽃다운 여교사들의 눈물겹고 용기 있는 헌신을 그저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으로밖에 판단하지 못하는 건가.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이고 앞으로 계속 이래도 되는 것인가.

최근 정치가이자 전 국회의원인 은수미씨는 대선 정국에서 대선후보가 아님에도 이 시기 우리가 정치적으로 무엇을 꿈꿔야 할지, 어떤 희망을 품어야 할지를 국민과 나누려는 취지로 <희망마중>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부제는 ‘알바가 시민이 될 수 있을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알바든 비정규직이든 특수고용이든 모두 시민이 돼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현재 그들의 취약한 고용관계상 지위를 배경으로, 그들의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을 제약하고 있음을, 자신이 만난 이들의 입을 빌려 다채롭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돼 있는 현실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이 시기 정치의 핵심과제요, 이번 대선에서도 중심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임을 역설한다.

은수미씨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사회학자 송호근씨도 연초에 <가 보지 않은 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1981년에 최초로 수행한 현대자동차에 대한 탐방조사 이후 약 35년 만에 다시 찾은 울산 상황에 대한 소회를 유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 책 한 권에 담아 피력했다. 여타 언론에서는 ‘노동조합은 약자가 아니다’는 타이틀로 이 책을 소개했지만 필자가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결론에서 강조하는 시민성(civicness) 문제다.

말하자면 지금의 현대차 노동자들, 정규직 조합원들은 개발독재시대를 겪어 오면서 장시간 노동과 수직적 인간관계에 익숙해져 수평적 소통과 주변을 헤아리며 생활에서 민주주의와 연대를 구현하는 시민적 덕목, 즉 시민성을 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국민의 모습이라는 거다. 현대차가 앞으로 가야 할 미래의 ‘가 보지 않은 길’에서 채워야 할 중요한 변화의 방향에 이런 주체의 전환까지 포함하는 사회적 측면의 혁신이 포함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고인이 된 단원고의 기간제 교사들은 높은 시민성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구성원이 지니고 표출한 그런 덕목을 기리고 장려할 인식의 틀을 공적으로 체화하고 있지 못하다. 이미 노동자들은 계층과 신분으로 서열화돼 있고, 그들이 아무리 실력과 시민성을 발휘해도 그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는 결정적으로 범주화돼 있을 뿐이다. 이런 사회적 시민권 차별은 이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 주며,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비단 이번에 희생당한 두 여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에 사회적 시민권을 확대 부여하고 노동의 시민성을 증진시키는 기획은 향후 한국 사회 개혁의 핵심 중 핵심이다. 일자리 창출과 개혁도 이런 가치의 신장에 복무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대한민국이 경제적 동물들로 득실거리는 차별과 서열의 나라가 아니라 보편적인 도덕적 덕목을 체화한 글로벌 시민들의 ‘품격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는 중추가 아닐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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