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하청업체에 노조가 설립되자 도급계약이 해지된다. 집단해고가 잇따르고 단체협약은 휴지조각이 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어김없이 대체인력이 투입된다. 노동위원회에서 판정이 나도 이행되지 않는다. 아사히글라스와 한국산연·유센로지스틱스코리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일본계 회사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유센지부와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한국산연지회 노동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을 찾아 “일본계 회사가 자행한 노조파괴와 불법행위를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어긴 노동법을 열거하며 책임지고 관리·감독하라는 취지의 항의서한을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특혜는 누리고 노조는 탄압하고

아사히글라스는 구미공단에 위치한 경북 최대 외국인투자기업이다. 액정표시장치(LCD) 유리기판을 만든다. 경상북도와 구미시에서 50년간 39만6천600제곱미터(12만평)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받았다. 5년간 국세 전액을 감면받고, 15년간 지방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누렸다.

2015년 5월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 세 곳 가운데 한 곳(지티에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는 한 달 만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도급계약기간이 6개월 남았는데도 말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3월 아사히글라스의 도급계약 해지를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아사히글라스는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

이들은 “세금 특혜를 누려 연평균 매출 1조원, 연평균 당기순이익 800억원, 사내유보금만 7천2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300명이 넘는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9년간 최저임금만 지급했다”며 “열악한 노동조건 탓에 노조를 결성하자 170명을 문자로 해고하고 2년 가까이 거리에 내팽개쳐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위치한 한국산연은 일본자본 산켄전기가 100% 투자한 회사다. 사측은 지난해 2월 생산부를 폐지하고 직접생산을 외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같은해 9월30일 생산직 61명 전원이 해고됐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올해 1월 말까지 해고자를 원직에 복직시키라고 판정했다. 그러자 회사는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국 노동부·검찰도 공범”

일본계 물류회사인 유센로지스틱스코리아는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9월 전·현직 지부 간부들을 팀원이 없는 고립된 부서로 발령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전보 판정을 내렸지만 회사는 원직에 복귀시키지 않았다. 회사는 다른 일본계 회사가 그랬듯이 올해 3월 지부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유센지부는 이날로 24일째 파업을 하고 있다.

일본 본사가 부당노동행위를 지휘하고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지부가 파업에 돌입하자 일본 본사는 유센코리아가 맡던 업무를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 유센코리아가 지부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는 화주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일본유센 본사에서의 최후 방침이 정해졌다”며 “이 상황이 있는 동안(노조 파업기간 동안) 회사 매출에 관계없이 수출지에서 관계가 좋은 파트너사를 통해 고객사 운송에 차질 없이 대응하라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성혁기 유센지부장은 “파업 이후 노동부가 회사에 대화를 제안했지만 사측이 거부했다”며 “일본 기업이 한국 정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일본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1945년 해방 이전 일제 강점기와 다를 바 없다”며 “한국에 들어온 일본 기업들이 세금지원 혜택은 챙기면서 국내법을 무시하고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허영구 아시아공동행동(AWC) 한국위원회 대표는 “대사관은 한국에서 영업하는 일본 기업들의 행태를 본국에 보고하라”며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노동부에 5건의 고소를 했지만 현재까지 검찰은 단 한 건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않고 시간 끌기만 하고 있다”며 “노동부와 검찰도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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