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민주노총, 4·16연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민주노총이 12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과 위험업무 외주화 금지 등 생명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한 대선요구안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다가온다. 탑승자 476명 중 172명은 구조됐지만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해 304명은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후 대한민국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사고 원인을 밝히는 진상규명은커녕 재발방지 대책조차 수립되지 않고 있다. 이 큰 참사에도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받은 형벌은 징역 7년이 고작이다. 청해진해운은 선박기름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벌금 1천만원을 물었다.

2011년 논란이 시작된 가습기 살균제 관련 피해자는 지난해 말까지 총 5천명이 넘었다. 이 중 사망자만 1천100명에 이른다. 기업이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해 제품을 생산·판매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시킨 사건인데도 제조사 대표들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존 리 전 옥시 대표는 무죄, 제조·판매사인 옥시·롯데·홈플러스 같은 기업은 1억5천만원 벌금을 냈다. 화학물질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강력한 처벌 없으면 대규모 인명피해 예방 어려워"

사업장이나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고 책임이 있는 사업주·법인·경영책임자·공무원 등을 처벌하도록 하는 한국판 기업살인법이 발의됐다.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를 유발한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내용의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날 발의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여수산단 폭발사고처럼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재해에도 기업이나 정부 관료가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관련해 동아건설 현장소장이 받은 처벌은 금고 2년이다. 192명의 사망자가 나온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에서 대구지하철공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금 1천만원을 낸 것이 전부다. 공사 사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사업주 처벌은 솜방망이다. 2005년 이천시 GS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붕괴 사건으로 9명이 죽고 5명이 다쳤지만 원청회사에는 벌금 700만원이 부과됐고, 현장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2년 LG화학 청주공장 다이옥세인 폭발사고 때도 원청회사 대표자는 무죄, 하청회사는 3천만원 벌금을 물고 마무리됐다.

생명 가벼이 여기는 풍토에 경종 울려야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는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구조와 수색 과정에서 정부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참사 규모가 더욱 커졌다"며 "국민의 생명을 앗아 간 기업과 경영진, 그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관계당국을 강력히 처벌하지 않고는 참사는 재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매년 2천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며 "노동자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기업은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위험방지 의무를 게을리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인·허가 공무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내용이 핵심이다. 노 의원은 "현행법은 재해가 일어나도 경영책임자를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벌하기 어렵고, 기업의 조직구조 때문에 경영자의 과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며 "대규모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민주일반연맹·건설산업연맹 등은 같은날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했다. 대선후보들에게 모든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도록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생명·안전업무 인력을 확충하고 원청이 안전보건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 아래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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