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박근혜 정권의 퇴진 다음 단계는 적폐청산과 사회변혁. 귀추가 주목되는 제도정치권 대선경쟁 승자 결정 및 정부 구성권이 형성되는 5월9일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 기울어진 이념의 운동장 왼쪽에서 사회변혁 외길을 걸어가는 활동가. 공안당국의 표적이 됐던 국가 공인 사회주의자. 변혁당의 정원현.

정원현은 1980년대 후반 대학생활과 학생운동을 했다. 백골단의 학교침탈이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택시운전을 하시던 학우의 아버지가 군산에서 미군에게 맞아 죽은 사건과 관련해 미 대사관 항의방문 투쟁을 갔다가 첫 연행을 당했다. 89년 천안문 사태를 보며 사회주의 재해석의 필요성을 느꼈고, 제4인터내셔널과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현실사회주의 국가 입장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키웠다. 국제사회주의자가 된 그는 92년 조직사건으로 2년8개월간 수배생활을 거쳐 94년 구속됐다. 서울구치소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 조돈희를 만나 토론하면서 노동자의 도시 울산으로 향하게 된다. 95년부터 울해협에 결합해 활동하면서 전해투와도 인연을 맺었다. 한전위탁장학생으로 대학에 파견됐다 복귀한 필자와 이때 만났다. 반독재 노조민주화로 활동 영역을 한정했던 필자와 당 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와는 서로를 예사롭지 않게 보며 인연을 이어 갔다. 그가 노동해방의 불꽃, 선진노동자의 길 등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평조합원운동의 전국적 조직가로서 현장조직과 선진노동자들의 전국적 결집체인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전국적 운동의 뇌관이었던 울산지역에서 노개투, 현자 정리해고 투쟁, 효성3사 투쟁, 열사투쟁 등 다수의 중요투쟁에 결합하며 길거리 투쟁의 현장에서 필자와 수시로 마주쳤다. 2002년 발전파업과 파업 이후 현장복구를 위한 발전해복투 순회투쟁에서 정원현의 노고는 실로 헌신적이었다.

2004년 당건투를 설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사회주의 지향 조직들의 통합 논의를 거쳐 2007년 사노련 창립과 울산지역위원장, 2009년 사노위 창립 및 전북지역 대표 등 꾸준히 어려운 길을 갔다.

특히 2008년 사노련 사건은 국가보안법 문제를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8명의 피고인 중 한 명이었다. 사건은 2014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이어졌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실천에 멈춤이 없이 당 건설을 위한 활동, 대중조직의 민주화와 계급적 노동운동의 강화를 위해 끝없이 토론하고 조직하는 활동을 했다.

정원현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변혁당이 출범하기까지 긴 세월의 과정을 ‘현장과 함께 사회주의를 꿈꾸는 혁명가’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그렇게 평가받기를 원했다. 그가 꿈꾸는 사회, 실천적 진지로서의 당, 노동자계급 운동, 연대운동의 현실은 늘 척박했고 삶은 늘 곤고했다. 같은 꿈의 실현을 위해 조직적·실천적 입장을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오랜 세월 노동현장 동지로서 함께해 왔다. 촛불항쟁이 전개된 지난 5개월여 동안 그도 필자도 치열했던 현장에서 각자 역할을 수행했다. 대선으로 모든 이슈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작금의 전개상황을 예견했지만 흐름을 사전에 바꾸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크다. 정원현은 건강상 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쉰다 만다 하던 2~3년 동안 산행을 통해 몸살림에 집중했다. 산행을 같이하기도 하고 몸에 안 좋다는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면서 그의 회한과 향후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3월 공식적으로 활동에 복귀했다. 해고 16년차인 필자가 지부 정기총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활동에 복귀한 그와 울산에서 다시 만났다. 긴 세월을 돌아서도 변함없이 울산을 지키는 정원현. ‘노동운동의 메카’라 불리던, 그러나 최근에는 자조적으로 ‘노동운동의 무덤’이라고 칭해지는 울산.

전국적으로는 견고하고 높은 정규직 담장을 앞에 둔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에서 어떤 실천적 대안을 내놓게 될지. 제도정치권의 높은 망루를 바라보며 천천히 전진하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대안을 어떻게 제시하게 될지. 촛불항쟁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역사적 국면의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는 무엇을 대중에게 호소하게 될지. 궁금하다. 지향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현방안과 동력 확보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임을 서로가 잘 알고 있다. 질문이 아니라 답을 제시해야 하는 때.

한국 자본주의체제 형성기와 일제 강점기를 통해 외래 또는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독립과 신체제 형성, 국제사회주의 연대를 위해 인생을 불살랐던 전통을 잇고 있는 정원현. 선배들의 못다 이룬 꿈의 단절을 막고 새롭게 잇기 위해 불꽃투혼을 발휘하는 정원현. 그의 꿈과 심신의 강건한 유지를 기원한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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