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도 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원청 노동자보다 무려 8배 가까이 높다는 안전보건공단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위험·유해업무를 하청업체에 넘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 것이다.

원청이냐, 하청이냐 하는 회사 소속만으로 사고사망 확률이 8배나 차이 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임금·노동조건 같은 노동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위험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거나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는 원청이 많은데 사망은 하청이 많다?

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조선·철강·자동차·화학업종 51개 원청사와 소속 사내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원청 노동자 19만3천982명과 같은 공장(사업장)에서 일하는 상주 하청업체 노동자 18만1천208명, 비상주 하청업체 2만6천513명 등 20만7천72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비상주 하청업체는 회사 주소지만 외부에 있고 노동자들은 원청 작업현장에서 일한다는 측면에서 사내하청과 다를 바 없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51개 원청사의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는 0.05명(사고사망만인율 0.05)이었다. 반면 사내하청인 상주업체 사고사망만인율은 0.39로 원청의 8배에 육박했다. 원청·상주·비상주업체의 합산 사고사망만인율은 0.20으로 원청 사고사망만인율보다 4배 높았다.

재해율은 하청보다 원청이 더 높았다. 원청 재해율은 0.79%(1만명당 79명)였으나 상주업체는 0.20%, 비상주업체는 0.08%에 불과했다. 사고가 더 적게 일어나는 하청업체에서 사망자가 더 많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하청업체 산재은폐를 원인으로 봤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은 “하청에서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원청이 위험·유해업무를 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실제 이뤄졌다는 의미”라며 “그럼에도 하청 재해율이 낮은 것은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고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선·철강·자동차·화학플랜트 업종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2014년 시행한 실태조사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사고시 산재보험 처리 비율은 8%로 매우 낮았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하청 노동자들은 산재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며 “같은 곳에서 일하는데도 하청 노동자들의 사고사망만인율이 높다는 것은 이들이 위험업무에 종사할 뿐만 아니라 안전관리에서도 방치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위험 외주화 금지·원청 책임성 강화가 해법

정부도 위험의 외주화와 산재은폐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는 원청의 산재예방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원청과 하청의 산업재해 현황을 통합 관리해 공표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연구원은 이에 따라 올해도 1천인 이상 제조업 전체를 대상으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를 산출한다.

정부는 사업주가 산업재해를 은폐하거나 교사 또는 공모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산재은폐에 형사처벌 조항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재사고를 노동부에 보고하지 않으면 최대 3천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책으로는 위험의 외주화와 산재은폐를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최명선 국장은 “원·하청이 함께 있는 사업장 대부분은 지정병원을 두고 그곳에서만 치료를 받게 해 짬짜미 산재은폐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사업주가 아닌 병원에 산재신고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병원 신고제도를 도입하면 산재은폐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기홍 실장은 “위험업무를 외주화할 수 없도록 금지하거나 하청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높이지 않는다면 산재 양극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살인기업·중대재해 기업 처벌을 강화해 산재사고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