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되면서 촛불집회가 커다란 승리의 환호성으로 마무리되고서 찾아온 2017년 봄날의 하루였다. 나는 이미 새소식, 뉴스로서는 가치를 잃어버린, 선고된 지 2개월이 지나 버린 하급심 판결에 관해 짧은 평석을 쓰고 있었다. 판결 선고의 날에 한껏 솟았던 흥분은 사라지 버린 채 취업규칙 무효확인 소송사건 판결문을 읽으면서 PC 자판을 건조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사무실 앞 덕수궁 돌담길엔 살구꽃이 하얀 봄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우리 노동조합이 노동자대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서 와 버린 이 꽃피는 봄날이 뿌옇다고, 자판을 두드리는 게 지겹다고 짜증이 나서 그저 하얗게 빈 한글문서에 까맣게 신명조의 수를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노동자권리를 두고서 법과 노동자, 노동법과 노동조합 사이를 헤매다가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자대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관해서 생각했다. 한 은행 사업장에서 정규직원으로 분류되지 않은 계약직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정규직노조가 합의해 줬던 것이고 이에 계약직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한 것이라서 무효라고 법원에 제소했으며, 지난 2월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과반수노조가 노사합의해 줬어도 무효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2. 박사모의 태극기집회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구속된 것이 촛불집회를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분노의 연설이 서울광장에서 고막이 떨어져라 울려 퍼지고 있다. 태극기집회만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민주노총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것이 다른 대선후보자들과 다른 정체성인 양 말하고 있다. 박근혜 없는 세상인데도 파쇼를 부르는 미친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있다. 1천5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 1조를 노래하며 스스로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고권력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구속을 위해서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에서 행동했다. 민주노총은 그 촛불집회의 주최단체인 ‘퇴진행동’ 참여단체의 하나였다. 노동자대표로서 민주노총이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스스로 이 나라 노동자의 대표라고 수없이 선언하고 연설했어도 이 나라 전체 노동자의 대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노총과 합쳐도 이 나라 노동자 중 10% 안팎의 조합원을 대표할 뿐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등 각종 정부 위원회에 노동자대표 지위를 부여해서 한국노총과 함께 참여하도록 하고 있어도 그렇다. 전체 노동자를 대표할 만한 노동자단체가 달리 없기 때문에 노동자를 대표해서 활동하도록 한 것일 뿐이다. 냉정하게 현실 그대로 보자면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 최상급 연합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각 5% 안팎의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촛불집회를 통해서 광화문광장을 박근혜 퇴진과 구속을 위한 국민 분노의 광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니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 주요 도시의 광장과 거리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시민의 함성으로 가득했으니 결국 국회와 헌법재판소, 검찰과 특검, 법원으로 하여금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고 구속하도록 했던 것이니 위대한 촛불집회였다. 촛불시민혁명이라고까지 말해지는 이런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행동했던 것이니 분명히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대표는 아니다. 사실 노동자대표였다면, 약 2천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 노동자단체였다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머물지 읺았을 것이다.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는 벌써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자행동으로 넘쳐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전체 노동자의 소수만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노동조합이었다. 이 나라 노동자대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해 온 노동조합이었지만 이 나라 노동자의 대표는 아니었다.

3.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대표한다. 근로기준법은 곳곳에서 노동조합에 사업장 노동자대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정리해고에 있어서 해고회피를 위한 방법과 해고대상자 기준에 관해 과반수노조와 협의하도록 하고(24조3항), 취업규칙의 작성과 변경에서 과반수노조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의 경우는 그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94조1항).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과반수노조에 근로자위원 선출권을 부여해서 실질적으로 사업장 노동자를 대표하도록 하고 있다. 그 외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관계법에서 노동조합에 사업장 노동자대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비록 사업장 전체 노동자 중 과반수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노동조합이라는 조건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노동법은 노동조합에 사업장 노동자대표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하나의 사업(장)에 “상시 사용하는 동종의 근로자 반수 이상이” 적용받는 단체협약을 그 사업(장)에 “사용되는 다른 동종의 근로자에 대해서도” 적용되도록 하고 있는데(35조), 이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 조항으로 과반수노조는 단체협약을 통해서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 기준을 정하는 데까지 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법으로 보자면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노동자대표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에 관한 협의권한을 통해 고용문제에 관여하고, 임금 등 근로조건 기준이 취업규칙에서 정해지는 현실에서 그 취업규칙의 작성과 변경에 의견을 말하고 특히 불이익변경시에는 동의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며, 노조가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노사협의회에서 구체적인 근로조건 및 해고 인사문제까지 정해는 현실에서 근로자위원 선출권까지 행사하도록 한 것은 사업장에서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에 대해 고용·해고 등 인사, 임금 등 근로조건 전반에 걸쳐 그 기준을 정하고 관여할 수 있는 지위를 노동조합에 부여하고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노동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전체 노동자의 보호자로서 인식하고 있다고 보인다.

4. 노동조합은 비조합원을 위해서도 활동해야 한다. 이렇게 노동자권리를 확보해 주고 지켜주는 노동자의 보호자로서 사업장 노동자대표 지위를 보장한 것이라면, 노동조합은 단순히 조합원을 위해서만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법이 노동자대표 지위를 보장하면서 노동조합에 당부한 것, 즉 법의 명령이라고 봐야 한다. 정규직·생산직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라고 해도 비정규직·사무직·판매직, 기타 비조합원 노동자를 위해서도 활동해야 한다고 법이 선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은 자신을 대표할 자를 선출할 지위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법적으로만 읽자면 말이다. 그들은 다른 노동자들이 선출한 자가 자신의 권리를 두고서 사용자와 협의하고 결정하게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헌법이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법률이 노동조합을 설립·가입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걸 행사할 의지와 용기가 없어 노동조합을 하지 않는 자들일 테니 감수해야 마땅하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다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을 대표해서 활동하도록 한 법의 소임을 노동조합이 저버려도 된다고 어느 법조문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사업장 노동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이라는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근로기준법 등 법률은 최소한의 의견수렴도 없이 그런 노동조합은 노동자대표라고 규정했다.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 사용자와 협의하고 결정할 노동자대표 지위가 노동조합에 있다고 선언하고 조합원이 아니라도 노동자에게 따르도록 법적으로 강제했다. 그만큼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사업장 노동자를 위해서 활동해야 했다. 정규직노조가 정규직원인 조합원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사용자와 합의하더라도 이미 정규직원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40% 이상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했다. 이미 삭감된 임금에 더해 임금피크제로 추가 삭감토록 한 것은 어떻게 읽어도 계약직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 노사합의라고 볼 수 없다.

5.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없다. 한 사업장에서만이 아니다. 오히려 비조합원의 권리를 삭감하고 박탈하는 일이 노동조합에 의해서 빈번히 행해졌다. 조합원을 위해서라며 노동조합은 태연하게 그렇게 행동해 왔다. 조합원이었으면 결코 삭감하고 박탈하지 않았을 노동자권리가 법이 사업장 전체 노동자를 대표해서 활동하도록 한 노동조합에 의해서 자행됐다. 사업장 규모, 어용과 민주를 떠나 우리의 노동조합사에는 수많은 사례들이 기록돼 있다. 규약과 협약상 조합원 자격이 인정됨에도 사용자 눈치를 보느라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자들도 노동자이니 노동자대표로서 그들을 위해서 활동해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조에 가입할 수 있음에도 가입하지 않은 비조합원에 대해서였다면 나는 노조가 조합원에 비해 차별해 대한다는 것을 문제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사업장에서 노동자대표로서 노동조합이 활동하지 못한 사례는 거의 대부분 규약과 협약상 조합원 자격조차도 인정되지 않는 비정규직 등 노동자들에 대해서다. 노조에 가입하고자 해도 가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노조들이 하는 짓이다. 노동자를 위해서 스스로 활동하면 결국은 노동자를 대표하게 된다. 법이 노동자대표로 활동하라고 규정했어도 활동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노동조합은 노동자대표 지위를 잃고 말 것이다. 사업장에서 노동자대표가 되는 법, 법이 아니라 스스로 노동자대표가 돼야 하는 노동조합 자신의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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