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재해로 생계에 영향을 받게 된 조합원과 그 가족을 위해 특별채용하도록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어려움에 처한 조합원 또는 그 가족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노동조합활동입니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산재사망자 유족보호 단체협약이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법원처럼 업무상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가족을 특별 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을 강행법규 또는 사회질서 위반으로 파악한다면, 노조활동 목적을 왜곡하고 강행법규와 사회질서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정미 정의당 의원·금속노조가 공동주최했다.



◇“단체협약에 일반인 관점 강요하면 안 돼”=박수근 교수가 지적한 법원 판결은 지난해 8월 내려졌다.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한 현대·기아차의 단체협약을 서울고등법원이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사실상의 일자리 대물림으로 사회 정의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A씨는 1985년 2월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008년 1월까지 근무하다 같은해 2월 현대자동차로 전직했다. A씨는 같은해 8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 2010년 7월 사망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로 인정돼 A씨의 가족은 유족급여를 받았다.

기아차와 현대차가 각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다. 유가족은 화학물질인 벤젠노출기준 위반과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기아차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자녀 1명에 대한 채용청구 소송을 기아차와 현대차에 제기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특별채용 관련 단체협약 규정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단체협약은 그 내용이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효력이 발생한다”며 “채용에 관한 단체협약 규정은 민법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박수근 교수는 “업무상재해를 당한 조합원 가족을 고용하기로 한 단체협약을 법원이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한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단체협약상 채용청구를 민법상 사회질서 위반으로 파악한다면 이것은 노사가 결정한 단체협약의 자치를 축소하고, 노조활동을 상당부분 제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원 판결은) 사회적 질서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청년층 입장을 고려하면 취지는 이해하지만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일반인의 관점을 너무 강조해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사회질서는 변천하는 관념”=지난 2015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민법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는 부단히 변천하는 관념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민법 103조에 의해 무효인지 여부는 그 법률행위가 이뤄진 때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그 법률행위가 유효로 인정될 경우의 부작용, 거래자유의 보장 및 규제 필요성, 사회적 비난의 정도, 당사자 사이의 이익균형 등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현희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산재사망자 유족 우선채용 단체협약 조항이 부단히 변천하는 가치관념의 영역인 사회질서에 반하는 내용인지, 언제부터 사회질서에 반하게 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단체협약상 우선채용 조항은 수십년 전부터 존재한 조항이었으나 대법원이 그 무효를 확인한 바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재사망자 유족 우선채용 단체협약 조항은 기업이 구성원들에게 행하는 사회보장 내지 복지 영역으로 평가돼야 한다”며 “사용자의 보호의무 위반이라는 측면에서 산재사망자 유족 우선채용 조항은 1차적으로는 사용자 귀책에 대한 책임조항”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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